이창호와 함께 뿅뿅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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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10대 신예 윤성현 3단이 패왕 전 도전 권을 획득해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김수장 8단과의「도전자 결정 3번 승부」에서 2승1패로 이겨 대망의 도전권율 수중에 넣은 것.
한편 김수장 8단은 작년에도 서능욱9단에게 1승 후2패로 패왕전의 도전 권을 놓치더니 2년 연속 도전 권 획득 일보직전에서 무릎을 꿇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이번 도전자 결정 국(제3국)에서는「마지막 1분」으로 초읽기에 몰린 탓으로 필승의 상황이었음에도 멀쩡한 대마를 죽여 뼈아픈 역전패를 당했다.
한국기원 연구생 출신 기사로 일찍부터 장래가 촉망되어「제2의 이창호」로 지목 받아 온 윤성현 3단은 강원도 속초가 고향인데 국민학생 때부터 서울에서 하숙하며 프로기사에의 꿈을 키워 온 야심 많은 소년이다. 백면 장신으로 운동선수처럼 균형 잡힌 체격의 미남.
이창호 6단과 충암 고교 동기동창인 이른바「충암 군단」의 한 사람.
그래서 동문선배인 유창혁 5단과 동급생(2학년), 이창호 8관 왕에게 교수 료 한푼 내지 않고 엄청난 지도를 받아 왔다. 그건 대단한 행운임에 틀림없다.
이창호만 하더라도 그의 스승인 조훈현9단에게 6년 동안 적지 않은 액수의 지도 료를 꼬박꼬박 남부하고 배웠는데 요즘의 연구생들이나 연구생 출신 청소년기사들은 세계적 큰 바둑 이창호에게 무료로 배우고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최근40, 50대 프로기사들 사이에는「이창호와 함께 뿅뿅을」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이창호는『정치흑막』『배꼽』등 소설이나 교양서적도 곧잘 읽는 편이지만 과다한 공식대국의 스트레스를 주로 전자오락으로 푸는 편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창호와 전자오락을 함께 놀아 주고, 그가 좋아하는 김밥과 떡볶이를 같이 나누기만 하면 바둑은 그냥 배울 수 있다는 얘기다.
『40대, 50대 기사들이 바둑이 늘고 싶으면 우선 권위주의부터 청산해야 한다. 그런 다음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이창호와 함께 어울리며 배우는 구도정신을 발휘하라』는 서봉수 9단의 충고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로 서봉수9단은 가장먼저 이창호의 실체를 인정하고 이창호의 대국 날마다 꼭 참석해 대국이 끝난 후 함께 복 기하는 등 어느 누구보다도 이창호 연구를 열심치한 결과 새롭게 개안해 세계가 놀라는 전적을 거두고 있다.
나이 탓이겠지만 이창호는 나이 많은 선배들과 담배연기 자욱한 기사연구실 대신 연구생 실에서 연구생들과 어울리는 것이 체질화되어 있는 눈치.
바둑이 늘고 싶은 자여, 연구생 실을 자주 기웃거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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