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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외국인 요코즈나 탄생|일본 스모 계 자존심 "상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일본의 고유 스포츠인 오스모에서 사상 첫 외국인 요코즈나의 탄생으로 일본열도가 들끓고 있다.
일본 TV들은 지난주일 낮 방송의 거의 대부분을 하와이출신 미국인 용병 아케보노(23·미국 명 차드로웬)에 관한 보도로 메웠다.
일본열도를 흔들어 놓은 아케보노는 지난 88년 2월 일본으로 건너왔다.
그는 현재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다카하나다(책화전·20)와 함께 88년 봄 대회 때부터 스모에 입문, 동기생으로 선의의 경쟁을 벌인 끝에 한발 앞서 요코즈나가 됐다. 거구의 미국인과 순수일본인 스모 선수 가족인 미남청년 다카하나다. 이들의 경쟁으로 스모는 더욱 관심을 집중시켜 왔다.
다카하나다는 지난 25일 요코즈나 바로 아래 직급인 오제키로 승진, 일본 스모는 바야흐로 아케보-간다카하나다 시대를 맞게 되면서 일본인들의 자존심이 상처를 입고 있는 것이다.
아게보노는 신장 2m4가·체중 2백12cm으로 역대 스모 선수 중 가장 키가 크다. 그는 지금은 스모 선수가 되기 위해 몸무게를 불려 뚱뚱하지만 대학시절까지만 해도 프로농구선수를 꿈꾸던 날렵한 몸집의 소유자였다. 그는 고교 때 농구선수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아 장학생으로 하와이 퍼시픽대학에 입학했으나 코치와의 불화로 대학을 중퇴했다. 이때 역시 하와이 출신으로 일본 스모에서 오제키까지 됐던 아즈마제키에 의해 스카우트돼 일본으로 가게 된 것이다.
아케보노는『나의 인생에서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 끝장을 보겠다는 각오로 일본행을 결심했다』고 도일 당시의 심경을 피력했다.
그는 입문 초기 키에 비해 하체가 약한 탓으로 안정감이 결여됐다는 지적을 받았으나 스모 최하위리그인 조노구치 에서부터 승승장구, 상위리그로 진출했다. 그는 18경기에서 연속 패배보다 승수가 많은 가치코시란 실적을 올려 최다 승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스모 계에 입문한 뒤 26경기만에 최상위리그 마쿠우치에서 2번째 지위인 오제키로 승진, 가장 빠른 기록을 올렸다.
스모는 상위리그라 할 수 있는 마쿠우치 리그(1∼5위) 와 그 밑의 주료·마쿠시타 산단매 조니단 조노구치 등 10등급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 같은 단계를 경기를 통해 하나하나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 주료리그만 올라가도 소위 역사라는 세키도리 칭호를 받는다. 따라서 주료 이상의 상위리그에 오르는 것도 엄청나게 힘들다.
한편 마쿠우치 리그도 성적순으로 서얼이 매겨져 있다. 요코즈나 밑에 산야쿠로 불리는 오제키·세키와케·고무스비가 동·서 군에 각 1명씩 있고 마에가시라는 동군은 14품까지, 서 군은 13품까지가 있는데 비슷한 직위끼리 리그를 벌여 우승을 가린다. 일본 스모는 도쿄(동조) 3번을 비롯해 나고야 오사카 후쿠오카 등에서 1년에 6번 정기적으로 경기를 가지며 매번 경기 때마다 전번경기 성적을 참고로 등급을 매기고 이는 급료로 연결된다.
요코즈나는 2번 연속 우승을 하거나 l년에 3개 대회우승을 차지한 선수만이 될 수 있으며 성적이 떨어지는 경우 강등되는 법이 없이 곧바로 은퇴를 해야만 한다.
오제키는 한 대회의 경기 중 8승 이상만 올리면 역시 강등되지 않고 자리를 계속 지킬 수 있다. 나머지는 매번 등급이 바뀐다.
요코즈나는 군대에서 별을 다는 것처럼 큰 혜택을 누린다. 월급제인 스모는 요코즈나가 될 경우 월 급여가 오제키의 1백55만9천 엔에서 1백85만4천 엔으로 올라간다. 협회는 승진 시 1백만 엔의 축하 금을 지급하고 경기 때마다 포상 금을 준다. 요코즈나의 퇴직기본금은 1천5백만 엔이다. 그러나 91년 은퇴한 치요노후지 처럼 특별한 공적이 있을 경우 1억 엔의 특별상여금을 받기도 한다. 은퇴 후엔 스모 협회 평의원이 돼 이사선임권이 부여되며 10여명의 시중꾼이 불기도 한다.
아케보노는 경기개시와 함께 상대에게 달려들어 큰 키와 체중을 이용, 양손으로 상대를 경기장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 특기다. 그는 키에 비해 몸무게가 너무 나간다는 지적을 받아 체중을 2백kg이하로 줄여야 요코즈나로 장수할 수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과거 아케보노와 같은 하와이출신으로 몸무게가 2백68kg이나 돼「인간 살코기 폭탄」이라는 별명을 가진 고니시키가 3개 대회에서 우승, 요코즈나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요코즈나에 승진하지 못해 미국정부로부터 공식항의를 받기도 하는 소동이 있었다 .
따라서 이번 아케보노의 승진은 인종차별이라는 국제적인 비난이 두려워 아케보노를 요코즈나에 앉힐 수밖에 없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동경=이석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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