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화」를 새롭게 만들자(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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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는 세차례의 연휴속에 2천만명 대이동이라는 교통난리를 겪으면서 신정,설,추석때마다 고향을 찾는다. 고금동서에 유례가 없는 이 난리를 겪으면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찾기위해 고향을 향해 떠나고 있는가. 한번쯤 명절이 갖는 의미와 그중에서 특히 설이 갖는 문화적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 떠나는가. 두고 온 고향의 부모님을 뵙고 인사를 드리고 조상의 차례를 모시기 위해서다. 농경사회의 제의는 뿌리의 확인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공동체적 삶의 유대를 다지는 축제였다. 우리의 고향찾기가 아직도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그냥 남들이 떠나니 마지못해 떠나고 가본들 할일이 없어 끼리끼리 모여 사흘 밤낮 술마시고 고스톱을 치면서 놀다가 시뻘건 두눈으로 다시 운전대에 앉아 상경길에 오르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되새겨 보자는 말이다.
효도란 명색이고 차례 한차례,절 한번으로 고향찾기란 끝나버리고 함께 간 처자식은 어찌되었든 친구들과 어울려 조상이 허가해준 도락만을 즐기다가 되돌아오는 휴일은 아닌지….
설과 추석이 공동체적 삶의 근원을 다지는 명절이 아니라 질탕하게 노는 휴일의 개념으로 바뀐게 오늘의 세시풍속이다. 몇몇 여론조사기관이 밝히고 있듯 명절 때마다 하는 여흥중에서 고스톱이라는 화투놀이가 단연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화투놀이를 위해 고향을 찾고 가족끼리의 휴가를 위해 명절을 휴가로 생각하는 변모된 우리의 명절문화가 이대로 좋은가를 다시 생각해 볼때다.
설은 원단이다. 새해 새 아침의 시작을 고향에서 맞으면서 가족과 친척,그리고 조상간의 유대와 결속을 다지며 한해의 설계를 하는 경건한 의식이다. 이런 의식을 말만으로 하자해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상응하는 놀이문화가 뒤따라야 한다.
윷놀이가 좋고 고스톱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함께 모여 공동체의식을 살리는 놀이문화가 자연스레 있어야 명절이 명절다워지는 것이다. 우리네 풍속에는 고향마다 특성있는 놀이가 수없이 많았다. 이런 놀이들을 꼭 민속경연대회를 통해서만 알릴 것이 아니라 명절때마다 지방자치단체가 주동이 되어 놀이판을 벌여보자는 것이다. 아이들은 제기차기 놀이를 마을마다 벌이고,어른은 윷놀이든 널뛰기든 씨름대회든 할것이고,면단위로 마을단위로 벌이는 차전놀이면 또 어떤가. 마을 특성을 살릴 민속놀이를 재현하고 개발해서 명절을 명절답게 보내는 운동을 문화부가 주도하고 지방자치단체마다 이젠 한번씩 벌여보기를 제안한다.
무턱대고 떠나고 하릴없이 투전판이나 벌이는 쓸모없는 연휴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윤기나게 칠하고 닦아주는 뜻깊고 재미있는 명절문화를 지금부터라도 벌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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