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서 대학생 자작자동차대회, 125㏄ 경차들의 '열정 질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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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릉 부릉 쾅, 꽝…부르릉~."

1일 오전 9시50분 귀를 찢는 굉음이 울리면서 엉성한 1인승 자동차들이 경북 경산시 영남대 정수장 뒷산을 돌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쏟아지던 장마비는 기세가 한풀 꺾였지만 오락가락하며 좀체 그칠 줄을 몰랐다. 비 때문에 트랙은 금세 진흙탕 길로 변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앞 자동차에서 튕겨 나온 진흙덩이가 뒤쫓는 자동차와 레이서의 얼굴에도 날아든다. 참가자들에겐 내리는 비도 날아드는 진흙더미도 안중에 없다. 오직 기록을 향한 집념뿐이다.

오후 1시20분. 진흙 길을 헤치며 4.2㎞ 오프로드 트랙을 3시간30분 동안 달린 자동차들이 멈췄다. 내구성 테스트가 끝난 것이다.

진흙탕 질주를 벌인 주인공들은 영남대 캠퍼스에서 열린 '2007 국제 대학생 자작 자동차대회'에 참가한 64개 대 80개 팀의 자동차 매니어 학생들. 외국에서는 미국 피츠버그주립대가 유일하게 참가했다.

이들은 직접 125㏄ 오토바이 엔진을 단 자동차를 만들어 대회에 참가했다. 출품작 대부분은 최대 시속 80~90㎞를 낼 수 있다.

이 대회는 영남대가 공학도의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기르고 이론을 현장에 접목시키기 위해 1996년 처음 열었다. 올해로 12회째다. 2001년부터는 미국자동차공학회(SAE)의 공인을 받은 국제 대회로 성장했다. SAE 인증을 받은 자작 자동차대회는 미국에서 1년에 세 차례 열린다. 미국 밖에서는 한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브라질.멕시코에서만 개최된다.

이번 대회 우승은 미국 피츠버그주립대의 '고릴라'팀이 차지했다. 이 팀은 지난해 처음 대회에 참가해 준우승한 데 이어 올해는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우승한 영남대 유새(YUSAE)팀은 2위에 그쳤다.

피츠버그주립대 코디 엠머(22)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수준에 걸맞게 한국 대학생들이 만든 차의 성능이 우수해 놀랐다"며 "지난해 준우승 경험을 살려 올해는 차량의 내구성을 보강했는데 맞아떨어졌다"고 기뻐했다.

영남대 유새팀은 안정된 성능을 발휘했지만 고릴라에 비해 내구력과 가속력에서 약간 밀렸다.

유새팀장 문민수(26.기계공학부)씨는 "아쉽지만 최선을 다했다"며 "좋은 차를 만들기 위해 동료들과 땀을 흘리면서 배운 경험이 더 소중하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이 만든 차는 보기에는 엉성했지만 여기엔 미래를 움켜쥐려는 청년 공학도들의 꿈이 녹아 있다.

대부분의 차에는 진흙 길을 갈 수 있는 경운기용 바퀴가 달렸다. 1인용 차체에는 유리도 달려 있지 않다. 하지만 성능은 만만찮다. 휘발유 4L를 급유받아 80㎞를 달리는 차도 있고, 암벽 주행도 한다.

지난달 28일부터 4일간 열린 이번 행사에는 기동력 테스트, 가속력 테스트, 내구력 테스트 등 일반 자동차의 성능 시험과 동일한 검증이 이루어졌다.

이 대회는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아 대회 결과와 내용이 미국 자동차공학회 홈페이지와 출판물에 실려 전 세계에 공개된다.

영남대 박상신(41) 기계공학부 교수는 "학생들이 갈고 닦은 실력을 겨루면서 공학도의 꿈을 펼치는 모습을 보면 미래 자동차산업의 발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대구=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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