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 탈출은 오직 작품으로|젊은 연극인들 팔 걷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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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의 발길이 점차 뜸해지고 있다. 연극 침체 론이 운위되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그 심각성이 요즘처럼 절실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지난해 한국연극계는 제대로 만들어진 창작극이 거의 전무해 이러한 암울한 전망을 더욱 현실감 있게 만들어 주었다.
대중매체의 압도적인 영향력은 연극의 입지를 더욱 좁히고 있다. 뉴 키즈와 서태지에 길들여진 신세대들이 연극의 현장성에 감응부알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연극보다 오락성에서 훨씬 앞서는 매체들이 속속 등장하는 상황은 전체 문화산업에서 연극의 경쟁력을 현격하게 떨어뜨리고 있다.
연극의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그간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지만 그 대부분은 연극 자체의 품격만 떨어뜨리는 결과로 끝나고 말았다. 이는 대부분 젊은 관객들의 대중 문화적 감수성에 호소하기 위해 다른 매체의 표현방식을 차용한 것들이었는데 대중매체에 대한 비판적인 거리감 결여가 치명적인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그래서 어느 평론가는 이를「대중 문화화 현상」이라 지칭하면서『상업주의 연극의 한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연극 고유의 공연예술로서의 「연극 성」을 회복하자』-.
젊은 연극인들은 연극 고유의「동시성」「즉시 성」이 제공되는 예술적 감동을 관객에게 깨닫게 해주는 작품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물론 새로운 흐름이 뚜렷하게 대두하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를 달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몇몇 진지한 연극인들의 활동은 아직 절망할 때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트로이의 여인들』『법에는 법으로』등 2편의 작품을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연출로 선보였던 김창화 씨는 주목받는 신예 중의 한 사람이다. 일반관객들에게는 딱딱할 수밖에 없는 고전극을 현대적으로 번안해 내고 간결한 표현으로 압축해 낸 솜씨는 그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게 한다.
그는 눈을 씻고 보아도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지 못하는 것이 큰 문제라며『젊은이들을 연극판으로 끌어들일 획기적인 방안이 마련되어야 연극계의 본격적인 세대교체가 가능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독일 뮌헨대에서 연극학박사 학위를 받은 이력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론가로서도 탄탄한 면모를 갖추고 있는 것도 그의 강점이다. 현재 젊은 연극연구가들과 함께 「공연과 이론을 위한 모임」을 주재하고 있는 그는 연극이론의 대중화가 시급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그는 4월에「연극이란 무엇인가」라는 제 하의 공개강좌를 기획하고 있다.
「연극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의 모임 」을 표방하고 있는 신생 극단 예군(예군)의 활동도 기대를 받고 있다. 이 단체는 특히 각 극단에 소속되어 있는 30대 초반 젊은 연극인들이 만든 모임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1년 전부터 공동학습 및 정보교환을 계속해 온 이 모임은 완성도 높은 정통 리얼리즘 연극을 자신들의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4월 중순 첫 무대를 예정하고 있는 이 모임의 대표적인 연출가 김혁수씨는『목소리를 내세우는 것이 아닌, 정서 표현에 치중한 무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실험극 쪽에서는 극단「작은 신화」를 이끌고 있는 최용혼 씨의 작업이 관심을 가져 볼 만 하다. 지난해 실험극계열 신예극단들의 공동무대인「푸른 연극제」에서『그 즈음의 두 사람』을 선보여 주목받았던 그는「무책임한 치기」에 그쳤던 우리 실험극의 병폐를 어느 정도 극복해 내리라 기대된다.
『실험극도 연극적인 재미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것이 그의 포부다. <임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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