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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행복한 선진국 下] 아일랜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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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05면

아일랜드! 여러분은 무엇을 떠올리십니까. 제임스 조이스나 오스카 와일드 같은 작가? 마이클 콜린스 같은 독립영웅?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공화군(IRA)? 솔직히 저는 ‘기네스’입니다. 초콜릿 색깔이 나는 아일랜드 생맥주 말입니다. 그걸 파는 아일랜드 선술집인 ‘아이리시 펍(Irish Pub)’도 생각납니다.

실용과 상생, 두 날개로 '화려한 비상' #20여년 만에 유럽의 뒷골목서 번화가로 … 자부심과 공동체 의식 강해

인구 411만 명의 작은 섬나라인 아일랜드에는 펍이 약 1만 개나 됩니다. 인구 약 400명당 한 개꼴입니다. 담배연기 자욱한 어두컴컴한 펍에서 기네스 잔을 부딪치며 웃고 떠드는 아일랜드 사람들. 제 머리에 각인된 아일랜드 풍경화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옛 이야기입니다. 아일랜드는 2004년 3월 세계 최초로 전면적인 실내 금연법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모든 공공장소가 대상입니다. 펍도 예외가 아닙니다. 법을 어기면 최고 3000유로(약 37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합니다. 지금은 실내 금연이 완전히 정착돼 있습니다. 대부분의 펍은 온 가족이 함께 가서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실 수 있는 건전하고 밝은 분위기의 전통 주점으로 바뀌었습니다.

20여 년 전만 해도 아일랜드는 유럽의 음습한 뒷골목 같은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첨단과 풍요가 어우러진 유럽의 번화가로 환골탈태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서로 어울리고, 함께 나누는 아일랜드 특유의 전통적 사회 분위기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아이리시 펍의 변화와 통하는 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일랜드는 700여 년간 영국의 식민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영국보다 훨씬 잘삽니다. 지난해 아일랜드의 1인당 국민소득은 4만9700달러로 영국의 1.3배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아일랜드 국민의 94%가 “나는 행복하다”고 말합니다(유럽연합 2006년 12월 여론조사). 올 2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부설 유럽사회조사(ESS)센터가 유럽 20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행복지수 조사에서 아일랜드는 덴마크와 핀란드에 이어 3위였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2005년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부설 경제연구소(EIU)가 전 세계 111개국을 대상으로 삶의 질을 평가한 결과 아일랜드가 1위였습니다. 국민소득, 평균수명, 정치적 자유도, 고용안정성, 가족생활, 양성평등, 공동체생활 등 9개 항목을 기준으로 ‘삶의 질 지수(QLI)’를 매겼더니 아일랜드는 10점 만점에 8.33점을 받았습니다. 영국은 29위였습니다.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아일랜드가 지금은 영국이 인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가 됐으니 상전벽해(桑田碧海)도 이런 상전벽해가 없습니다.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의 중심가인 오코넬가(街)에 가면 높이 120m의 첨탑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스파이어(Spire)’입니다. 뉴밀레니엄을 기념해 2003년 1월 완공됐습니다. 스파이어는 ‘유럽의 병자(病者)’에서 ‘켈트의 호랑이(Celtic Tiger)’로 탈바꿈한 아일랜드의 기적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중반만 해도 아일랜드 경제는 심각한 위기였습니다. 실업률은 18%에 달했고, 일자리를 못 구한 젊은이들은 너도나도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1840년대 1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감자 대기근’의 악몽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20여 년 만에 아일랜드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행복한 선진국’으로 도약했습니다.

“한마디로 실용주의적 선택의 결과라고 봅니다.” 아일랜드 경제사회연구소(ESRI)의 연구교수인 크리스토퍼 휠런 박사는 철저하게 실용주의에 입각해 국가전략을 짜고, 이를 실천에 옮긴 것이 오늘날의 성공을 가져왔다고 말합니다.

86년 아일랜드 총리실 직속 국가경제사회위원회(NESC)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모든 것을 ‘제로 베이스’에서 새로 시작한다는 각오로 국가발전 전략을 짰습니다. 완전개방, 적극적인 외국인투자 유치, 정보통신(IT)과 금융업 중심으로 산업구조 개편, 인적자원 활용 극대화, 노사정 합의체제 구축이 전략의 기본 줄기였습니다. 이를 토대로 정부, 노조, 사용자, 농민 대표가 모여 87년 제1차 사회연대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켈트의 호랑이’의 골격이 그때 만들어졌고, 거기에 살을 붙여 몸집을 불리는 과정이 그 이후의 성공 스토리입니다.

아일랜드의 국가발전 모델에 대해 더블린대 사회정책학과장인 토니 파히 박사는 “영
ㆍ미 모델과 노르딕 모델의 중간쯤”이라고 설명합니다. 규제완화와 감세, 유연한 해고와 고용 같은 영ㆍ미 모델의 특징을 수용하면서도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이라는 북유럽 모델의 특징을 일부 차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율을 낮게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전반적인 사회복지 수준은 북유럽 국가들에 비해 낮은 편입니다. 국가가 운영하는 국민연금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개인연금을 따로 들기도 하고, 무상의료라지만 만성적인 의료진과 병상 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도 아일랜드는 EU 회원국 중 가장 높은 6%의 실질 GDP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실업률은 4.3%로 사실상의 완전고용 상태입니다. 고속성장하는 나라가 대개 그렇듯 아일랜드는 ‘붐 타운’ 같은 어수선한 분위기입니다. 곳곳에 새 건물이 들어서고, 여기저기 공사가 한창입니다. 자동차를 이용해 교외에서 더블린 시내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 주당 평균 10시간을 도로에서 허비한다는 기사가 현지 신문에 주요 뉴스로 실릴 정도로 교통난도 심각합니다. 고속성장의 후유증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국민적 자부심과 공동체 의식이 중요한 요인이라고 봅니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아일랜드인이라는 사실에 대단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있어요. ‘행복하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데에는 이런 자부심이 크게 작용했다고 봐요. 또 하나는 물이 차면 배가 떠오르듯이 배에 탄 구성원 전체가 함께 올라가고 있다는 공동체 의식도 중요한 요인입니다.” 파니 박사의 설명입니다.

토머스 모어가 그린 유토피아는 세상에 없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를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서는 과정, 어쩌면 그것이 행복인지 모릅니다. 아일랜드와 한국은 국민들의 기질로 보나, 역사로 보나 닮은 구석이 많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는 한국이라고 일본이 인정하는 그런 날이 오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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