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의 불장난(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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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걸프전쟁당시 미국에서는 이 전쟁을 어디까지 끌고가 어떻게 종결할 것인가를 놓고 세개의 견해가 있었다. 이라크에 점령된 쿠웨이트를 해방시켜 미국에 우호적인 왕정을 회복시키자는 온건론,이라크를 완전히 점령하고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을 전범자로 처벌하여 권력에서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는 강경론,그리고 쿠웨이트를 수복한 다음 이라크로 진격하되 후세인정부의 항복을 받는 선에서 그치자는 중도론이었다.
부시대통령은 결국 중도론을 채택했다. 이에 강경론자들은 중동지역의 평화를 위협하는 근원은 후세인이기 때문에 그를 제거하지 않는 한 걸프전 승리의 의미는 희박하다고 비판했다. 부시는 이라크의 패전으로 후세인이 정치적 반대파에 의해 제거될 것으로 낙관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후의 사태는 강경론자들이 예견한대로 진전돼 왔다.
후세인은 오히려 국내 반대파를 제거하고 친위세력으로 권력을 강화하여 남부의 시아파와 북부 쿠르드족의 반란을 진압하고 유엔의 제재조치들을 계속 거부해 왔다. 최근엔 미국의 정부교체기를 틈타 비행금지구역에 미사일을 배치하고 10일에는 쿠웨이트에 특공대를 보내 유엔군이 감시하던 미사일을 탈취하는가 하면 11일엔 다시 쿠웨이트해군기지안에 있는 창고를 철거했다.
분명히 지금의 중동지역 소요의 근원은 이라크측에 있고 이라크에 의한 모든 소요행위는 후세인대통령의 의사와 선동에 맹종하는 이라크인들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 따라서 후세인대통령이 스스로 자제하고 국제사회에서 타국·타민족과 더불어 살아가겠다는 공존의식으로 나오지 않는 한 그같은 소요와 반격은 계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서방측에 의해 이라크령의 남부와 북부에 설정된 「비행금지구역」은 분명히 독립국가인 이라크에 대한 주권제한이다. 그러나 비행금지선의 선포를 자초한 것은 이라크 자신이다. 걸프전 패전후 그동안 후세인정부에 의해 탄압받아온 시아파와 쿠르드족이 남과 북에서 봉기했을 때 후세인정부는 이를 비인도적인 방법으로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대량 학살극까지 벌였다. 서방측이 이런 탄압적 군사행위를 억제키 위해 취한 조치가 바로 비행금지구역 설정이다.
중동에 평화를 가져오고 이라크의 주권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후세인대통령이 책임있는 정치지도자로서의 국제적인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후세인은 이란의 회교혁명으로 팔레비왕이 축출된 직후 이란의 국내가 어려울 때 이란을 공격해 8년간의 이란­이라크전을 유발한 장본인이다. 거기에 이웃 약소국 쿠웨이트를 침공하고 국내 시아파와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에 비인도적인 탄압을 가함으로써 밖에서는 그를 믿을 수 없는 지도자로 여기고 있다. 후세인의 자제와 신뢰회복,이것만이 지금 중동평화의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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