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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재외국민 투표, 철저한 준비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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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헌법재판소가 28일 재외국민의 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은 '헌법 불합치'라고 결정했다. 1999년 1월 같은 내용을 합헌이라고 판단한 지 8년 만에 이를 번복한 것이다. 이 같은 결정 변경은 헌재가 결정문에서 밝힌 대로 국민·국가적 역량의 발전과 국제 사회의 보편적 기준에 맞춘 것이라고 이해한다.

재외국민의 참여는 선거에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2005년 말 19세 이상 재외국민 투표권자는 영주권자 170만 명과 상사원·유학생 등 단기 체류자 115만 명 중 210만 명 정도다. 서울·부산·경기에 이은 경남과 비슷한 규모다. 1997년과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1, 2등 득표 차가 각각 39만 표와 57만 표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하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이해 대립은 첨예하다. 28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도 입씨름만 했다. 한나라당은 이번 대선부터 전면 허용하자고 하는 반면 열린우리당은 단기 체류자부터 단계적으로 실시하자고 주장했다. 이렇게 논란만 벌인다면 차라리 좀 더 시간을 갖고 신중하고 치밀하게 준비하는 편이 더 낫겠다.

헌재는 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법적 혼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내년 말까지 관련 법을 고치도록 여유를 줬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최소한 6개월 전에는 입법이 이뤄져야 투표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유권자 명부와 투표 의사를 확인하는 것부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투표소 설치 등 선거관리를 위한 기술적인 문제도 많다. 인터넷 투표 도입 여부와 부정 투표 방지, 불법 선거운동 단속과 처벌은 주재국의 주권과도 얽혀 치밀하게 따져 봐야 할 문제다.

특히 투표권을 납세·병역 등 의무를 전제로 하지 않고 기본적 권리로 인정하게 되면 이를 성실하게 이행한 사람과의 형평성, 조총련 소속 재일동포 등의 투표권 요구 가능성 등에 대처할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 또 안정적 현지 정착을 장려해 온 재외국민 정책을 어떻게 손상시키지 않을 것인지도 충분히 검토해야 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