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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Review] 인간 사라지고 자본 지배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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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형제 1~3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휴머니스트,
각 330~346쪽, 각 권 9800원

"한 유명한 아나운서가 위화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남녀구분도 제대로 안 된 공중화장실에서 여자 엉덩이를 훔쳐보는 장면을 왜 작품의 첫머리로 장식했냐고. 왜 그렇게 더럽고 불건전한 이야기를 썼냐고 말이다. 위화는 대답했다. 문화혁명이전의 중국인들은 정말 그렇게 더럽게 살았다고. 하지만 진정 슬픈 것은 문화혁명 이후에는 그렇게 더러운 생활조차 사라졌다는 것이라고."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나라’하면, 흔히 일본을 떠올린다.하지만 이제 만만한 여행지이자 질 나쁜 농산물 생산지로 각인되어버린 중국은 어떨까. 등잔 밑이 어둡기로 치면, 중국 또한 마찬가지가 아닌가. 국제뉴스나 역사 교과서를 통해 전달되는 중국의 정보가 아닌, 오랫동안 함께 지내지 않는다면 알 수 없는 중국인의 끈질긴 습속과 은밀한 심성. 그것은 단편적인 정보가 아닌, 이야기꾼의 영혼이 담긴 소설로 주어졌을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허삼관매혈기』(푸른숲)로 36세에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 위화가 이 장편소설로 10년 만에 돌아왔다. 하버드나 예일의 중문과는 물론 세계각국의 중국 관련 소식통들이 ‘중국을 이해하는 프리즘’으로 위화 소설을 주목하고 있다.

 『허삼관매혈기』가 중국 인민의 터무니없는 순수성을 보여주었다면, 『형제』 는 ‘통속적인, 너무나 통속적인’ 중국인의 가치관을 그려낸다. 당장 먹을 것이 없어 자기 피를 팔아 연명할지언정, 허삼관에게는 지켜야할 무엇이 있었다.
아무 것도 가질 수 없지만, 모든 것을 가질 수도 있는 인간의 희망. 그것이 『허삼관매혈기』를 통해 본 중국의 가능성이었다. 하지만 이 소설『형제』 의 주인공 이광두는 폐품을 팔아 어마어마한 졸부로 등극한 이후 소중한 모든 것을 철저히 잃어버린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아무 것도 가질 수 없는 인간의 절망, 그것이 『형제』로 돌아온 위화의 첫 번째 메시지다.

위화 문학의 숨은 주인공은 이름도 얼굴도 없는 구경꾼들이다. 구경꾼들은 신혼부부의 달콤한 첫날밤을 거침없이 짓밟는가 하면, 눈앞에서 죄 없는 사람이 린치를 당해 죽어가는 장면을 보면서도 호기심 이상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지켜야 할 윤리 따위는 없고 오직 원초적 욕망만이 희번덕이는 군중의 야생성. 이것이야말로 위화 문학의 끈질긴 BGM(배경음악)이다.

제 1권이 문화혁명 이전의 중국사회를 압축한다면, 2~3권은 문화혁명 이후의 중국사회를 풀어낸다. 문화혁명이전의 군중들이 뒷담화와 관음증의 제왕들이었다면, 문화혁명 이후의 군중들은 화폐에 걸신들린 아귀처럼 그려진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군중의 속성은 타인의 삶에 거침없이 개입하여 타인의 삶을 재단하고 심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명화나 에티켓과는 아무 인연이 없는, 중국군중의 무서운 오지랖이야말로 위화문학의 숨은 동력이다. 남의 돈에만 이빨이 달린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도 이빨이 달려 있다.

이 날카로운 이빨은 두 주인공 송강과 이광두의 부모의 삶을 너덜너덜하게 물어 뜯어놓고, 끝내 그들의 목숨마저 앗아간다. 2~3권은 규칙을 조롱하고, 제도를 모르쇠하며, 조직을 찜쪄 먹는 사기의 달인, 이광두의 무용담이다.

그는 바로 이 군중의 심리를 철저히 이용하여 최단시간에 졸부로 성공한 신화적 자본가가 된다.

그는 모든 역경을 뚫고 자수성가에 성공하는 입지전적 인물로 미화되지만, 동시에 교양도 윤리도 사랑도 헐값에 팔아버린 졸부의 상징이기도 하다.

1권이 마지막 신념과 낭만을 지켜낸 인간의 죽음을 애도하는 비극이라면, 2~3권은 이광두의 요절복통 성공기를 통해 중국사회의 급속한 자본주의화를 거침없이 풍자하는 희극이다.

한 유명한 아나운서가 위화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남녀구분도 제대로 안 된 공중화장실에서 여자 엉덩이를 훔쳐보는 장면을 왜 작품의 첫머리로 장식했냐고. 왜 그렇게 더럽고 불건전한 이야기를 썼냐고 말이다. 위화는 대답했다. 문화혁명이전의 중국인들은 정말 그렇게 더럽게 살았다고. 하지만 진정 슬픈 것은 문화혁명 이후에는 그렇게 더러운 생활조차 사라졌다는 것이라고. 촌스럽고 비위생적이기 그지없는 그 시대는, 잠자리를 한 번 하면 반드시 결혼해야 했던 천진한 사람들의 시대이기도 앴던 것이다.

이 소설을 읽은 첫 번째 느낌은, ‘이제는 숨을 곳이 없다’는 뼈아픈 자각이었다. 전세계가 자본의 깃발 아래 낱낱이 점령당했다는 것. 그 거대한 중국조차 자본의 숲으로 물들면, 이제 세계는 똑같은 풍경으로 획일화되겠구나 하는 공포. 위화를 통해 중국사회의 모든 비밀을 담은 판도라의 상자는 활짝 열렸다. 그 거대한 판도라의 상자를 뛰쳐나온 중국사회의 다채로운 암호들을 해석하는 일, 그것은 이제 독자들의 몫이 되었다.

정여울<문학평론가>

(1)위화(余華ㆍ47): (2)쑤퉁(蘇童)과 함께 중국 당대 문학을 이끄는 쌍두마차다. 93년 발표한 장편 『인생』을 장이모우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으면서 원작자 위화도 세계적 작가로 떠올랐다. 한국에서도 잘 나간다. 95년 발표한 장편 『허삼관 매혈기』는 한국에서도 7만 부가 넘게 팔렸다. 다른 중국 작가들이 한국에서 기껏해야 1만 부 나갔던 상황을 생각하면 상당한 기록이다.

위화 소설의 장점은, 강력한 서사에 있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있고 등장인물을 형상화하는 데 탁월하다. 위화가 80년대 전위적인 작품을 발표했던 걸 기억하는 중국 문학 전공자들은 요즘 그의 소설이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변화한 게 아니냐고 우려하기도 한다. 위화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비유가 있다.‘위화가 중국의 공지영이라면, 쑤퉁은 중국의 김훈이다.’ 제법 그럴 듯한 해석이다.

(2)쑤퉁(蘇童): 위화보다 세 살 어리다. 둘은 함께 80년대 소위 ‘선봉파’ 문학을 이끌었고 개인적으로도 친한 사이다. 공교롭게도 위화가 5월 방한했고 쑤퉁도 이달 중순 『나, 제왕의 생애』 출간에 즈음해 이달 중순 방한했다.

쑤퉁은 위화만큼의 대중적인 인기는 못 누렸다. 한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평단은 쑤퉁을 높이 치는 경향이 있다. 치밀한 묘사와 탄탄한 문장력 등에서 특히 높은 점수를 받는다. 위화와 쑤퉁이 비슷한 때 방한한 건 요사이 한국에 이는 (3)중국 소설 바람을 상징하는 일이다.

(3) 중국 소설 바람: 이제껏 한국에 알려진 중국 작가라곤 ‘아Q정전’의 루쉰, ‘『붉은 수수밭』의 모옌이 전부였다.여기에 프랑스 국적의 샨샤, 미국 국적의 하진 등이 더해지는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의 흐름은 사뭇 다르다. 중국 소설이 갑자기, 그것도 떼를 지어 상륙하고 있다. 위화와 쑤퉁 말고도, 모옌의 『생사피로』, 예렌커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등도 국내 출판을 준비 중이다. 쑤퉁의 또 다른 작품 『푸른 노예』도 이미 번역이 끝났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90년대 이후의 중국 소설은 서구에서도 가치를 인정받는 우수한 작품이다. 최근 활발해진 한ㆍ중 문화교류가 문학으로 확대됐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시장 원리가 작용한 결과로 보는 게 옳다. 일본 소설 판권료가 치솟자 국내 출판계가 재빠르게 중국 소설에 눈길을 돌린 것이다. 여하튼 가벼운 읽을 거리 위주인 일본 소설에 물린 독자라면 중국 소설 바람은 반가운 소식이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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