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급 출발 26년만의 영예|국세청 첫 여성사무관 된 제연희·이상위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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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3천5백 명에 이르는 여자세무공무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최근 국세청 첫 여성사무관의 영예를 나란히 안은 이상위(47·본청 총무과)·제연희(45·소비세과)씨의 공통된 일 성이다.
여성문제를 많이 다루는 노동부·보사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선 일찌감치 여성사무관들이 맹활약하고 있지만 국세청은 물론 경제부처를 두루 살피더라도 여성이 일반행정직 사무관자리에 오른 경우는 극치 드물다.
더구나 이들은 국세청이 문을 연 이듬해인 지난 67년 9급 말단으로 함께 출발해 26년만에 간부 직에 올랐다는 점에서 더욱 값진 성취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경북 김천 성의여고를 졸업한 뒤「남에게 봉사할 수 있는 길이 없을까」하는 소박한 생각에서 때마침 있었던 9급 공무원 시험을 보게 됐다는 제사무관은 남자들도 3, 4수를 거듭하는 사무관임용시험에 이번 단 한차례 응시로 3대1의 관문을 뚫었다.
『잘 몰라서 그렇지 6급 이하 여성직원들 가운데도 유능한 인재들이 수두룩합니다. 여자 일처럼 돼 있는 민원·간접세업무 말고도 여자들에게 보다 다양한 업무영역이 개방되길 기대합니다.』
그는 지난 80년 여자세무공무원으로는 처음으로 세무사자격을 따기도 했고 90년에는 경희대대학원 세무관리학과에서「우리나라의 소득세제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는 등 이론과 실무에 밝고 자기계발을 게을리 하지 않는「맹렬 여성」으로 이미 세정 가에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 80년 바늘구멍 같은 세무사 관문을 뚫었을 때「개업할까」하는 유혹에 사로잡힌 적도 있지만 제씨의「명성」을 전해들은 당시 김수학 국세청장이 7급 직원에 불과한 그를 김천세무서에서 서울 본 청으로 직접 끌어들여 일하게 한 일화는 아직도 국세청 주변의 화제 거리다.
이사무관은 사설독서실신세까지 진 사무관 시험준비 때문에 고3아들의 대입뒷바라지를 충분히 못 해 준 것이 못내 아쉽다. 그러나 아들과 나란히 시험에 합격(연세대)한 것으로 모두 보상받았다며 환하게 웃었다.
서울 동명여고출신인 그는 26년 동안 줄곧 본 청 총무과에서 인사업무만 맡아 온「인사 통」으로 국세청 사무관이상의 출생지·학력·경력 등 기본신상은 물론 개개의업무능력, 심지어 취미까지 훤치 꿰뚫고 있을 정도여서『이 여사 없이는 간부인사가 안 된다』는 농이 나올 정도.
그는 지난 86, 88년 서울 아시안게임·올림픽 때 올림픽조직위 인력지원업무라는 중책을 맡아 적재적소배치였다는 평가를 받았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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