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느낌!] 가족의 속내 … 그 씁쓸함에 대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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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필 모리슨
출연:에이미 애덤스, 엠베스 데이비츠
장르:드라마 등급:청소년 관람불가
20자 평:가족에 대한 냉정하지만 진실된 시선

 콩가루 집안이다. 같은 지붕 아래 사는 사람들이 이렇게 따로 놀 수가 없다. 2005년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은 뒤 2년 만에 국내에 소개되는 영화 ‘준벅’이다. 미국의 시골 중산층 가족 구성원들이 몰이해로 서로 상처를 주면서도 한편으론 서로에게 다가가려고 애쓰는 모습을 그렸다. 가족의 정이나 유대감이 예전 같지 않다고 고민하는 우리에겐 그저 남의 얘기로만 보이진 않는다.

 시카고에서 그림 중개상을 하는 메들린(엠베스 데이비츠)은 결혼 6개월 만에 처음으로 남편 조지(알렉산드로 니볼라)와 함께 노스캐롤라이나 시골에 있는 시댁을 찾아간다. 그런데 애초부터 시댁에 가려고 나선 길은 아니었다. 마침 시댁 근처에 사는 유망한 화가를 만나 자신과 거래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진짜 목적이었다.

 그러니 시댁 식구를 만나는 게 그리 즐거울 리 없다. 게다가 시아버지는 무뚝뚝하고 시어머니는 퉁명스럽다. 시동생 조니(벤 매켄지)는 노골적으로 형수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다. 가족이란 이유만으로 서로 어떻게든 잘 지내보려 하지만 곳곳에서 마찰음이 일어난다. 메들린을 반갑게 맞이하는 유일한 사람은 푼수 같은 동서 애슐리(에이미 애덤스)다. 그는 어린이 같은 천진난만함으로 침체된 집안 분위기를 살린다.

 영화는 사건보다 인물의 감정에 집중한다. 후반부에 나름대로 중대하다면 중대한 사건이 벌어지긴 한다. 메들린은 시골 화가를 찾아가느라 중요한 순간에 가족과 함께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가족 관계가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이들은 사건을 통해 ‘우리는 가족’이란 사실을 재확인하면서도 의사소통의 단절로 인한 갈등으로 답답해한다.

 영화는 막판에 모든 인물이 화해한다는 할리우드식 해피 엔딩을 거부한다. 대신 갈등을 적당히 덮어둔 채 막을 내린다. 그게 현실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지난해 말 국내 개봉한 ‘미스 리틀 선샤인’이 엉뚱하고 과장된 말과 행동을 일삼는 가족을 통해 현실을 마음껏 비웃었다면 ‘준벅’은 담담하고 차분하게 현실을 보여준다.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는 자칫 밋밋하게 흐를 수 있는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특히 10여 군데 영화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애덤스의 공이 크다. 필 모리슨 감독은 신인답지 않은 비범한 연출력을 보여줬다. 28일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와 명동 CQN에서 개봉.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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