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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직과 「머리」(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자기보다 현명한 인물을 주변에 모으는 방법을 터득한 사나이,여기 잠들다­. 미국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의 묘비명이다.
자기보다 우수한 인재,자기에게는 없는 능력을 지닌 인재를 자기 주변에 끌어모을 수 있다는 것은 기업의 경영주는 물론 국가의 지도자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사람을 제대로 평가해 쓸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모든 능력 가운데에서도 으뜸가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사기』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어느날 한고조 유방이 한신과 잡담을 나누는 가운데 우연히 장수들의 용병술에 화제가 미쳤다. 그러자 유방이 한신에게 물었다. 『나에게는 몇만명의 병졸을 거느릴 능력이 있다고 보는가』『폐하는 기껏해야 10만명이지요』『그렇다면 그대는 어떤고』『저는 많으면 많을수록 잘할 수 있습니다』. 유방이 웃으면서 『그렇다면 왜 내 밑에 있는가』라고 묻자 한신은 이렇게 대답했다. 『폐하는 「병졸의 장수」가 될 능력은 없지만 「장수의 장수」가 될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신은 원래 항우막하에 있었지만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자 유방에게 온 인물이다. 바로 그 한신을 중용했기 때문에 유방은 항우를 이길 수 있었다.
평소 『건강은 남에게 빌릴 수 없지만 머리는 빌릴 수 있다』고 말해온 김영삼 대통령당선자가 요즘 주변에 인재를 끌어모으려 부심하고 있는 모양이다. 「새술은 새부대에」라는 속담이 있듯이 자신의 개혁구상을 추진하려면 과감한 인사가 필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그는 최근 자신의 사조직인 민주산악회와 「나사본」을 해체시켰고 「중청」도 곧 해산시킬 것이라 한다. 그야말로 읍참마속의 심정을 실감케 한다. 그뿐 아니라 며칠전에는 가족들을 모아놓고 앞으로 친인척들의 정치·이권개입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엄명을 내리기도 했다. 인사에 사정은 금물임을 우리는 역대 정권을 통해 너무나 많이 경험해 왔다.
들리는 말로는 새 정부의 요직은 대략 6백여개나 된다고 한다. 문제는 그 「자리」에 걸맞은 「머리」를 어떻게 빌려 쓰느냐다. 국민들은 지금 김 당선자의 인사를 무엇보다도 관심깊게 지켜보고 있다. 아무쪼록 「주변에 인재가 모여들었다」는 후세의 평가가 있기를 기대한다.<손기상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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