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바둑 최강전」뒷 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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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진로배 SBS세계바둑 최강전」에 얽힌 숨은 얘기를 좀 더 해야겠다.
모두들 중국 팀의 명단에 섭위평 9단이 빠진데 대해 매우 의아해 하고있어 알아보았다.
중국대표팀 선발기간 중 섭9단이 대만 올림픽위원회 초청으로 대만에 체류 중이었던 것이 결정적 이유다.
과거에는 중국바둑협회에서 섭9단에게 우선 선발의 특전을 주었었고, 대만 정부 역시 대륙동포라 하더라도 공산당원의 입국은 허용치 않았었는데 세상 참 많이 달라졌다.
조치훈 9단의 이름이 안 보이는 것도 궁금하다.
조9단이 비록 일본기원소속일망정 임해봉 9단처럼 일본 팀으로 출전하는 것은 우리의 국민정서가 용납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한국팀으로 나오자니 국내기사 한 사람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미안하다며 제1회 대회 참가를 사양하던 조9단이 후일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음인 듯 『제2회 대회엔 한국팀의 선봉장으로 내보내 주십시오. 중국·일본선수들을 모조리 무찔러 버리겠습니다』고 의욕을 보였었는데 이번에는 일본에서의 일정에 쫓겨 나오지 못함으로써 아쉬움을 남겼다.
일본 팀의 요다 노리모토 8단은 삭발투혼을 보여 화제.
과거 이창호 6단과의 논타이틀 5번 승부 때도 머리를 빡빡 깎고 필승의 결의를 보인 끝에 3승1패로 이김으로써 다케미야 마사키 9단 등 쟁쟁한 일본의 간판스타들이 한국의 15세 소년에게 무릎을 꿇어 땅에 떨어졌던 일본바둑의 자존심을 되찾은 집념의 기사인데 이번에도 삭발하고 나와 섬뜩했다.
작년의 제1회 대회 때 한국팀 선봉장 유창혁 5단의 맹활약으로 일본 팀은 차세대의 주역으로 손꼽히는 고마쓰 히데키 8단과 요다 8단 등 믿었던 선봉장들이 추풍 낙엽처럼 쓰러져 혼비백산했고 작전에도 차질을 빚어 마지막 대국자로 내정되어 있던 다케미야 9단이 미리 나오는 등 우왕좌왕 하다가 모조리 탈락, 한·중이 우승을 다투었었다.
그때 자존심을 크게 상한 요다 8단은 빚을 갚기 위해 절치 부심 하는 인상. 성경 속의 삼손과는 달리 그는 삭발해야만 괴력이 나오는 것일까.
요다 8단의 비장한 각오를 아는지 모르는지 유5단은 방심하고 있었다.
줄곧 압도하던 바둑을 천려일실로 노림 수에 걸려 불각의 카운터펀치를 얻어맞고 말았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요다 8단만 꺾었으면 5승쯤은 무난했을 텐데…』 관계자들의 탄식이 실감난다.
요다 8단은 난적 유5단을 꺾느라 탈진했음인 듯 중국의 조대원 9단에게 완패 당하고 말아 삭발투혼의 효력은 단1회로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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