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세계를 누비는 ‘환경 소년’ 조너선 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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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 12면

신인섭 기자

“초록 마을을 52피트(약 16m) 높이의 먼지 토네이도가 덮쳐요.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어요. 우리에겐 고그린맨(GoGreenMan)이 있잖아요.”

자신이 생각해낸 스토리를 신이 나서 설명하는 조너선. 몽골에서 황사 현상을 보고 들은 뒤 금세 만들어낸 것이다. 조너선은 이름보다도 ‘고그린맨’으로 더 알려져 있다. 인터넷 사이트(www.gogreenman.com)에 자신이 직접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어낸 ‘고그린맨’을 연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그린맨은 태양열과 바람 에너지를 이용해 ‘공해 박사’와 ‘가스 깡패’ 같은 나쁜 사람들로부터 ‘초록마을’을 지켜내는 정의의 사도예요. ‘착한 하나’나 ‘워터 우먼’ 같은 친구들이 도와주지요.”

고그린맨은 비뚤비뚤하지만 발랄한 삽화가 곁들여진 아동 소설이다.

“2월 말쯤 미국 국립환경재단에서 제작한 ‘지구 온난화’ 다큐멘터리를 봤어요. 보자마자 방에 들어가 고그린맨 이야기를 만들었지요. 머리에서 펑 하고 자꾸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아버지 이경태(37ㆍ건축업)씨가 조너선을 위해 웹사이트를 만들어줬다. 글과 그림을 올리고 배경음악을 덧붙이는 단순한 형태였지만, 어린 소년의 환경 이야기는 인기를 모았다. 지금까지 약 15만 명이 다녀갔다.

존 케리, 꼬마 환경운동가에게 놀라다

사이트를 연 뒤에도 조너선은 지구 온난화를 막고, 환경을 보호하자는 이야기를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었다. 어머니 멜리사(37ㆍ주부)가 국회의원들에게 편지를 보내보면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조너선의 편지를 받고 웹사이트를 방문한 의원들한테서 속속 연락이 왔다. 환경문제는 미국 정가에서도 큰 이슈였고, 마침 ‘고그린(GoGreenㆍ친환경)’이 환경운동의 표어처럼 쓰이고 있다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미시시피주의 작은 도시 리지랜드에 살던 조너선은 워싱턴으로 향했다.

“존 케리 상원의원을 만났을 때가 제일 신났어요. 환경문제에 관해 얘기도 많이 나눴고요.”

에피소드 한 토막. 케리 의원이 살충제 DDT 문제에 관해 자신이 쓴 책을 조너선에게 건넸다.

“어, 나 그 책 읽었는데….”

환경문제를 다룬 케리의 저서는 어른들이 읽기에도 쉽지 않다. 깜짝 놀란 케리 의원은 자신의 책을 주제로 조너선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고, 그가 읽은 고그린맨 내용에 대해 조너선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헤어지면서 두 사람은 각자 자기의 저서(조너선은 인터넷 연재분 4편을 제본해 『고그린맨의 모험』이라는 소책자를 만들었다)에 사인을 해 나눠가졌다. 조너선의 워싱턴 순례는 워싱턴 타임스 등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한국ㆍ몽골ㆍ일본…세계를 누빈다

조너선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줄곧 미국에서 자랐다. 어머니가 미국인이고 한 살 때 이민을 갔기 때문에 한국말은 서툴다. 인터뷰도 영어로 진행했다. 이번이 첫 한국 방문이다. 워싱턴에서 열린 학회에서 만난 이돈구 세계산림학회장(서울대 교수)의 추천으로 산림청이 환경의 날(5일)을 맞아 조너선을 초청했다.

21일 출국 직전까지 빠듯한 일정이었다. 몽골을 방문해 나무 심기 행사에 참석했고, 환경의 날엔 서울시청 광장에서 “지구 온난화가 이대로 진행되면 세계 해안지역이 다 바다에 잠긴다”고 호소했다. 이치범 환경부 장관도 만났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초청으로 6ㆍ15 남북 공동선언 7주년 행사에 참석해 “북한에 밤나무를 심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마침 이 자리에는 한명숙ㆍ손학규 등 대선 주자가 많이 참석해 환경 메시지를 한국 정치인들에게도 전할 기회를 가졌다.

조너선의 꿈은 작가나 과학자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상원의원 환경 담당 보좌관’이다. “상원의원은 너무 바쁜 것 같아 싫다”고 천진난만하게 말하는 조너선. 귀국한 뒤엔 그를 후원하는 미국 의원들과 함께 고그린맨을 마스코트로 하는 ‘어린이 환경 교육 법안’ 추진에 참여할 예정이다.

“다큐멘터리를 본 것만으로 과연 이렇게 열심히 환경운동을 하게 될까? 다른 이유는 없었니?”

기자의 질문에 조너선이 고개를 똑바로 들었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요,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서라면 당장 뭐든지 해야겠다는 생각이 가슴에서 막 솟아났어요. 누구라도 그걸 봤다면 그랬을걸요?”

부모의 독특한 교육법

‘고그린맨’은 열 살 소년의 작품 수준을 뛰어넘는다. 20여 명에 달하는 등장인물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고, ‘석유 해적(Petrol Pirate)’ ‘재활용 로저(Recycle Roger)’ 등 이름도 두운(頭韻)을 살려 재치있게 붙였다. 편당 8∼13쪽으로 분량도 꽤 된다. 벌써 20편까지 줄거리도 다 짜놓았다. 몽골에 다녀온 뒤 구상한 ‘황사 편’까지 합하면 21편이다. 이 내용을 묶어 출간하기로 한국 삼성출판사와 계약했고, 일본에서는 쇼가쿠칸(小學館) 등과 협상 중이다. 미국에서도 출판계약이 마무리 단계다.

조너선은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어머니가 집에서 직접 가르치는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 “틀에 박힌 학교 교육이 잘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아버지는 말한다. 그렇다고 별다른 영재교육을 하는 것도 아니다. 영어ㆍ산수ㆍ과학 세 과목만 오전에 3시간씩 가르친다. 나머지는 모두 자유시간이다. 조너선은 책을 읽거나 TV 과학채널을 보고, 만들기나 그리기도 한다. 물론 고그린맨 이야기도 쓴다.

“햄버거나 탄산음료는 먹이지 않습니다. 텔레비전 만화도 안 보여주고요. 허황된 내용인 것 같아서 ‘해리 포터’ 시리즈도 안 읽혔습니다. 장난감은 레고만 잔뜩 있지요.”

아버지 이경태씨는 공부를 강요하지 않고 자유롭게 놀도록 하는 대신 부모가 해롭다고 판단한 것은 엄격하게 금지한다고 설명했다. 친구들과 비교하며 불만을 가질 법한데 조너선은 “레고에 질리다니, 오∼ 그런 일은 평생 없을 걸요?” 하며 웃는다.

‘스타워즈’ 레고를 가장 좋아하지만 영화는‘열세 살 관람가’이기 때문에 3년 뒤에 볼 거라고 말했다.

“솔직히 산수 같은 건 또래들보다 못해요. 하지만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관심 있는 일을 하도록 도와줄 겁니다.”

아직 어린 소년이 환경운동을 계속하려면 부모의 부담이 만만치 않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방문하고 싶어 하면 보호자가 함께 가야 한다. 생업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조금 덜 벌고 아이에게 시간을 선물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직 대통령을 만나도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는 당당함은 학교에선 얻을 수 없는 산 교육 덕분이죠.”

하지만 무엇보다 우선순위에 두는 것은 가족이다. 여동생과 함께 미국에 남은 엄마를 그리워하는 조너선을 위해 아버지는 중국 칭화(淸華)대 초청을 거절하고 서둘러 귀국길에 올랐다. 다음에는 꼭 온 가족이 함께 다니겠다고 약속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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