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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삽화로 엮어낸 그림 형제의 ‘백일야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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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 21면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 작 ‘고슴도치 한스’

19세기 초반에서 중반에 걸쳐 출판된 ‘그림동화’는 방대한 민담을 오랜 세월 동안 수집한 탓에 여러 가지 버전으로 소개되어 왔다. 그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백설공주의 계모가 용서를 받았다고 알고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녀가 뜨겁게 달구어진 구두를 신고 춤을 추어야 했다고 기억한다. 독일 민담을 뜻하는 용어 ‘메르헨’을 그대로 제목으로 사용한 『그림 메르헨』은 그림 형제가 수집한 판본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간 번역본이다. 101편의 메르헨을 수록하고 있는 이 책은 ‘무쇠난로’ ‘요린데와 요링겔’처럼 어린 시절 놓치고 지나간 낯선 이야기들을 싣고 있다. 그러나 낯익은 이야기도 새롭게 느껴지곤 한다. ‘개구리 왕 혹은 강철 하인리히’를 읽다 보면 지금껏 몰랐던 하인리히, 개구리 왕자에게 닥친 불행 때문에 가슴이 부서질 것 같아 강철 띠를 동여매고 다닌 충실한 하인의 존재를 알 수 있다.

『 그림 메르헨』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 그림, 김서정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484쪽, 3만5000원

『그림 메르헨』의 삽화를 그린 사람은 ‘여왕 기젤라’로 그림뿐만 아니라 글쓰기에도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삽화가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 사실성과 환상성을 절묘하게 결합해 이름을 얻었고, 하나의 작품 안에서도 여러 화풍을 보여주는 하이델바흐는, 이 책도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첫 번째 이야기 ‘엄지동이 재봉사의 여행’은 굴뚝으로 빠져나온 연기를 타고 멀어져가는 엄지동이의 그림으로 시작된다. 모험의 시작인 데도 씩씩하거나 쾌활한 느낌보다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아련하고 초현실적인 삽화. 그러나 하이델바흐는 동화에서는 그리 많이 사용하지 않는 사실적인 표현도 과감하게 구사한다. 침실까지 따라온 개구리에게 못되게 구는 공주는 이불 위로 벗은 어깨를 드러내고, 독신남 일곱 난쟁이가 모여 사는 오두막엔 포도주병들이 널브러져 있다. 그의 그림은 또한 아름답다. 섬세한 결을 따라 변해가는 털가죽 빛깔과 오톨도톨하게 솟아오른 풀잎은 매끈한 종이 위에 그린 그림이라고는 믿기 힘들다. 마치 하늘 위에, 풀밭 위에, 머리카락 위에, 원하는 색깔만 입혀놓은 것 같다.

누구나 한번쯤은 어릴 적에 ‘그림(Grimm) 동화’가 진짜 ‘그림[畵]’ 동화인 거라고 착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예쁘고 두꺼운 『그림 메르헨』은 아이들에게도 좋지만, 뒤늦게 진실을 깨닫고 상처받았던 어른들에게도 좋은 그림책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아도 괜찮다. 어느 페이지를 펼치더라도 그림과 그림 메르헨이 뛰쳐나오니 그 순간부터 꿈같은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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