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다니는 바다의 UN, 둘로스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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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포항신항에서 열린 둘로스호 입항 환영식에서 전통의상을 차려 입은 세계 각국의 승선 자원봉사자들이 배에서 내려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포항시 제공


22일 오전 10시 경북 포항시 청림동 포항 신항 안 포스코 부두.

길이 100m에 6800t이 넘는 거대한 여객선인 둘로스호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출입문을 따라 아프리카 출신 흑인부터 흰 피부의 유럽인까지 전통 의상을 차려 입은 각국의 젊은이들이 서툴게 "안녕하세요" 라고 하면서 방문객을 맞았다.

둘로스호는 1914년 건조돼 현재까지 운항하는 최고령 여객선이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아 영화로도 유명해진 ‘타이타닉호'(1912년 건조)보다 2년 뒤에 만들어졌다. 처음엔 양파를 나르는 화물선으로 이용되다가 이민자 수송선을 거쳐 호화 여객선으로 바뀌었다. 78년에 독일의 비영리 구호단체인 GBA(Good Books for Allㆍ좋은 책을 모든 이에게)이 인수해 선교ㆍ구호활동용 여객선으로 쓰이고 있다.

이 배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ㆍ미국ㆍ몽골 등 50여 개 국 32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타고 있다. 그래서 애칭이 '떠다니는 UN(국제연합)'이다. 현재 한국인 승선자는 29명으로 남아공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둘로스호는 일본을 거쳐 한국을 찾았다. 목적은 선교활동과 둘로스호를 한국 국민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중동이나 아프리카 국가처럼 정정이 불안한 나라를 방문해서는 구호활동도 활발히 펼친다.

개장식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의 전통의상 퍼레이드를 펼치고 춤과 노래 공연을 했다.

작은 UN을 이끄는 둘로스 국제공동체 단장은 한국인 최종상(55) 박사다. 그는 런던 신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교수생활을 하다 2004년 9월에 단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곧 포스코를 견학할 예정"이라며 "51개국 승선자들에게 한국의 발전상을 보일 수 있어 감회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정박 중이지만 배는 조금씩 흔들렸다. 선실에서 한 층 올라가자 둘로스호가 자랑하는 선상 서점이 펼쳐졌다. 자그마치 6000여종 50만권의 책이 진열돼 있다. 종교ㆍ건강ㆍ컴퓨터ㆍ아동도서 등 다양한 책이 진열돼 있었다. 한국 입항에 맞춰 한국 책도 10만권을 새로 준비했다. 지난 29년 동안 약 2000만 명이 찾은 서점이다. 책 판매로 연간 600만 유로(74억5000만 원)가 들어가는 운영비의 30%를 충당한다고 한다.

서점에서 책 판매를 돕는 독일 출신 자원봉사자 키키(21)는 "한국이 처음이지만 따뜻하게 맞아 주어 즐겁다"고 말했다. 키키는 고교를 졸업한 뒤 2년째 둘로스를 타고 있다.

둘로스호는 다음달 3일까지 포항에 머물며 자원봉사자와 일반인이 함께 하는 다채로운 행사를 펼친다. 책도 판매하고 배 안 조종실ㆍ기관실ㆍ숙소를 관람하는 투어 프로그램(어른 5000원)도 운영한다. 둘로스호는 포항에 이어 부산ㆍ목포ㆍ인천에 차례로 머문 뒤 8월 말 홍콩으로 떠난다.

둘로스 호를 볼 날도 많이 남지 않았다. 규정에 따라 2010년에 폐선될 예정이다. 영국인 선장 맥도널드는 "3년 뒤면 둘로스호가 없어지기 때문에 그전에 한국인과 우정을 쌓고 싶다"며 "많이 찾아 달라"고 말했다.

포항=송의호 기자 yee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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