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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층 사칭 “땅짚고 한탕치기”/정보사사건(추적 ’92: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김영호 등 “주범은 아니다” 발뺌/제일생명서 230억 가압류… 가족들 “알거지 신세”
92년은 유난히 대형 의혹사건이 많았던 한해였다. 지난해에 비해 시위·단순범죄가 줄어든 반면 복잡한 금융사고나 선거부정·구조적 비리사건이 잇따랐다. 저무는 한해를 정리하며 사회의 관심이 쏠렸던 사건들을 뒷쫓아본다.<편집자주>
권력층만 빙자하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왜곡된 사회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던 6공 최대 사기극 정보사부지 매각사기사건.
7월초 발생한 이 사건은 편취금 6백60억원에 대한 검찰수사 결과 「전문사기단에 의한 단순사기극」으로 일단락된뒤 지난달 23일까지 6차공판이 거듭됐지만 「거물급」 비호세력 존재 여부 등 숱한 의혹의 실타래는 풀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88년 군부대의 지방이전계획이 알려지면서 10여차례나 계속됐던 정보사를 둘러싼 사기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주춤해졌고 고위층 사칭 범죄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졌다는 점에서 교훈주는 바컸다. 정부당국이 군부대부지 불하방식에 대한 전면수정을 가하는 기회도 됐다.
지금까지 구속된 사람은 전 합참자료과장 김영호씨(52),정덕현(37·전 국민은행 대리)·정영진(31·성무건설 사장)씨 형제,정건중씨(성무건설 회장),제일생명 윤성식상무(51),김인수씨(40)를 포함한 토지브로커 5명 등 모두 10명.
곽수열(45)·민영춘(40)씨 등 브로커 2명은 도피중이다.
이들은 현재 서로 『상대방이 주범이고 나는 사기의도가 없었다』며 발뺌을 계속하고 있지만 오는 7일의 결심공판에서 사기죄가 인정돼 5∼15년의 중형이 구형될 것으로 보인다.
범행 아지트로 사용된 서울 서초동 관선빌딩 3,4,10층에 있던 성무건설은 7월30일자로 휴업계가 제출된뒤 대부분의 직원들이 뿔뿔이 흩어져 사실상 법인 자체가 소멸한 상태. 빌딩관리소측은 『사건이후 지금까지 4천여만원의 관리비가 체납됐는데 받을 길이 막막하다』며 울상을 짓고 있다.
다만 직원 20여명중 설계팀에 있던 5명이 3층(4,10층은 다른 업체가 입주준비중)에 남아 성무건설과 별도인 설계회사설립을 추진중이다.
「한탕」으로 수백억원을 거머쥔뒤 부동산 투기·유흥비 등에 물쓰듯 돈을 썼던 이들은 이번 사건의 최대 피해자인 제일생명측에 소유재산을 모두 가압류 당해 「알거지」가 된 처지.
제일생명측은 8월초부터 윤 상무를 제외한 나머지 구속자들과 성무건설의 재산을 철저히 추적,가족명의로 도피시킨 부동산까지 찾아내 지금까지 2백30억원 상당을 가압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건중씨의 부인 원유순씨(49)는 소유 부동산이 가압류당하고 곳곳에서 빚독촉을 받자 10월중순 자신이 경영하던 S유치원까지 팔아넘긴뒤 주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원씨는 특히 두달전 미국에 있는 아들과 합류하기 위해 출국하려다 체납된 지방세 3백만원을 납부하지 못해 미국행이 좌절되기도 했다.
정영진·김영호씨 가족도 부인 명의의 빌라는 물론 장롱 등 가구들까지 모두 압류 딱지가 붙어 가족들이 쫓겨날 날만을 기다리는 상태다.
제일생명은 또 국민은행을 상대로 2백30억원 예금청구소송을 냈고 동부 등 4개 신용금고는 제일생명측에 2백억원 약속어음청구소송을 진행중이다.
제일생명은 『정 대리의 부정인출 부분이 명백하기 때문에 국민은행과의 싸움에선 매우 유리하다』며 설사 신용금고들에 상당액을 물어주더라도 2백억원 이상의 재산을 가압류해 놓아 피해가 거의 없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검찰수사 발표직후 사퇴한 제일생명 하영기사장은 당뇨병과 9월초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을 이유로 외부와의 공식 접촉을 거의 하지 않고 있는데 최근 접촉한 관계자는 『상처는 별게 아닌데 세간의 의혹에 대한 심적 부담감 때문에 기피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사건당시 「위기설」까지 나돌았던 제일생명의 경영상태는 최근들어 신계약 입금액이 꾸준히 상승하는 등 일단 정상을 되찾았다.<이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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