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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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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권위주의 정권 시절 '악법도 법이다'는 말이 도덕 교과서에 실린 적이 있다. 사형 선고를 받고 옥에 갇힌 소크라테스가 남긴 발언이라는 것이다. 부당한 판결이었지만 충실한 아테네 시민이었던 그가 탈출 권유를 뿌리치면서 기꺼이 독배를 마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그런 말을 했다는 문헌학적 증거는 없다. 이 명제는 원래 실정법 사상을 압축시킨 고대 로마의 법언(法諺)인 "그것이 나쁜 것이기는 하지만, 법이 그리 되어 있다"(dura lex, sed lex)로 소급된다. 그것을 일제 때 경성제대의 일본인 법학 교수가 '악법도 법이다'로 옮긴 것이다.

내용적으로도 악법이 법이라는 데 소크라테스는 쉽게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당하지 못하거나 정의롭지 않은 강제 규범이 자동적으로 법으로 여겨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군사독재자들이 소크라테스의 이름을 빌려서까지 이 말을 강조한 이유는 자명하다. 철권통치를 엄호하는 온갖 악법에 국민이 맹종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 말이 한 시대를 풍미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현대사의 그늘을 보여 준다.

이 일화는 법이 인간에게 갖는 중차대한 의미를 압축해 드러낸다. 법은 인간과 동물을 나누고 문명과 야만을 가르는 중요한 잣대인 것이다. 일정한 규범 없이 공동체가 오래 유지될 수는 없다. 도덕과 관습이라는 규범과 함께 강제성을 지닌 법의 존재가 정치공동체의 지속성을 담보해 주기 때문이다.

특히 근대 시민법의 도입은 법과 인간다운 삶의 필연적 상관관계를 결정적으로 정초(定礎)하게 된다. 주권자인 국민이 동의한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며, 통치의 과정과 절차가 법률에 의거해야 하고, 모든 법은 궁극적으로 시민의 권리와 자유에 봉사해야 한다고 시민법은 선포한다. 결국 진정한 자유란 우리 스스로 지키기로 동의한 법과 규범 안에서의 자유인 것이다. 법치주의와 민주주의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노무현 대통령의 거듭된 선거법 위반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다. 하나의 헌법기관인 대통령이, 또 다른 헌법기관인 중앙선관위의 법률적 판단에 대해 노골적으로 조롱하고 불복하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성취를 위협하는 행위다. 이는 독특한 개성의 정치인이 벌이는 우발적 행동으로 간주될 수만은 없다. 집권 이후 노 대통령이 습관적으로 보인 행태 가운데 하나가 1987년 6월의 시민혁명으로 태어난 '87년 체제'의 법적 기반을 흔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87년 체제와 헌법은 노 대통령 자신이 속한 6공화국의 존재 근거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돌출 언행들은 스스로의 존재 근거에 대한 부정이기도 하다. 우리는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를 나누면서 양자가 다른 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절차에 대한 충실성과 헌신 없이 갑자기 내용과 실질이 확보될 리 만무하다. 삶의 현장에서 차근차근 실천되는 준법 행동 없이 민주주의의 실현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87년 헌법은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오랜 군사독재와 싸워 거둔 시민들의 민주적 투쟁과 합의의 산물이다. 따라서 이의가 있더라도 국민의 또 다른 합의에 의해 개정하기 전까지는 준수돼야 한다.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위기의 큰 부분은 법치주의의 부재에서 온다. 여기서 법치주의는 '악법도 법이다'고 강변하는 권위주의적 실정법 만능주의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법치주의의 법은 이성적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동의한,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합의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취객의 스트레스 해소 무대가 된 심야 파출소 풍경, 집시법(集示法)을 공공연히 무시하는 각종 시위들, 한 재벌회장의 사적(私的) 복수극, 현직 대통령의 거듭된 선거법 위반에는 한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이 사례들은 모두 법치주의가 민주주의의 핵심적 실제 내용이라는 교훈을 배반하고 있는 것이다.

윤평중 한신대·사회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