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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스 퇴장과 한·미 동맹 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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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는 사인을 청하면 '무법자(Lawless라는 자신의 성을 농담의 소재로 삼은 것 )'라고 쓰고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한국의 정.관.재계 고위 인사들과 폭탄주를 들이켜며 두터운 인맥을 쌓았다. 대선 주자들을 포함해 힘깨나 쓰는 국내 인사들은 워싱턴에 올 때마다 그를 만나는 일정을 잡기 바쁘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임기 내내 한.미동맹을 책임져오다 다음달 초 물러나는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차관보 얘기다.

한반도에 관한 그의 정보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지난해 가을 북한의 핵실험설이 분분했을 때 "한.미 관리들은 10월 둘째 주 월요일(9일) 서둘러 출근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핵실험 일자를 정확히 맞혔다. 한국 관리들은 "우리도 모르는 정보를 롤리스가 늘 더 많이 안다"고 한탄한다.

롤리스는 1970년대 미 중앙정보국(CIA) 정보원으로 한국에 여러 해 동안 근무했다. 당시 그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박정희 정권의 핵개발 계획을 포착해 미국이 이를 저지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서울의 관리들끼리 주고받는 대화를 놓치지 않고 추적해 핵 개발 관련 문건을 통째로 입수한 것이다.

당시 국방장관으로 이런 롤리스의 활약을 눈여겨본 도널드 럼즈펠드는 2001년 부시 대통령 행정부에서 생애 두 번째로 국방장관이 되자 그를 요직에 앉혀 한.미동맹 업무를 일임한다. 이에 따라 한국군 이라크 파병, 용산기지 이전, 주한미군 감축과 재배치, 전시작전권(전작권) 이양을 비롯한 굵직한 동맹 현안들이 모두 롤리스의 손에서 처리됐다.

그때마다 그는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 전술을 썼다. 지난해 7월 9일 서울에서 미래동맹 구상회의가 시작되자 마자 롤리스는 "2009년에 전작권을 이양하겠다"고 폭탄 선언을 했다. 최소한 2012년께나 전작권 이양을 계획해온 한국군 관리들은 사색이 됐다.

한국 측은 다음날이 롤리스의 환갑임을 감안해 한복 선물과 '노리수'라는 이름까지 준비하고 잔치를 벌이려 했을 만큼 태평했는데 롤리스가 불의의 일격을 가한 것이다. 한 달 뒤 롤리스는 워싱턴 특파원단을 펜타곤(미 국방부 청사)으로 불러 2009년 이양계획을 일방적으로 공개했다. "2009년 전작권을 이양해도 한국군의 능력은 충분하다고 우리는 판단하며…." 아무 표정 없이 준비한 발언을 읽어 내려가는 그의 모습은 동맹의 파트너가 아닌 냉혹한 협상가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그 뒤 한국은 되레 전작권 이양을 하루라도 늦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방향으로 신세가 역전된다. 입으론 전작권 이양을 떠들면서도 정작 전작권이 조기 이양될 경우 당장 대북 억지력 위축을 걱정해야 하는 한국의 사정을 꿰뚫고 있었던 롤리스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물론 롤리스는 혈맹인 한국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애정도 있다. 하지만 한국에 대한 그의 인식은 '시혜자 미국과 동생 한국'이라는 70년대 한.미 간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과의 동맹을 근간으로 하면서도 중국의 급부상과 북한의 고립에 대처해 유연한 대외관계를 모색해야 하는 21세기 한국의 변화상은 그런 인식 속에 설 자리가 없었다.

협상에서 "미국인지 북한인지 선택하라" "주한미군을 나가라고 한다면 얼마든지 나가주겠다"는 냉전시대 압박술을 단골 무기로 삼는 롤리스에게 한국은 반발했고, 동맹은 불필요한 파열음을 내기 일쑤였다.

미국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했는지 롤리스의 후임에 현실주의자로 알려진 제임스 신 조지타운대 교수를 임명했다. 그런 점에서 롤리스의 퇴장은 한.미동맹이 냉전구도에 바탕한 '시혜성' 동맹에서 합리주의에 바탕한 '호혜적' 동맹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증표인 셈이다. 때마침 한국에서도 미국과 자주 대립했던 노무현 정권의 임기가 끝나가고 있다. 양국에서 새로운 인물들이 변화된 상황에 맞게 동맹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길 기대한다.

강찬호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