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왕…축출 당한 자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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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고전은 우리가 그것의 무게에 짓눌려 버리는 한에는 텅빈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적 맥락의 변모를 토대로 한 끊임없는 재해석으로도 결코 자신을 소진시키지 않을 때 고전은 고전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래서 고전은「마르지 않는 샘」이다.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타임리스 리어』(연극집단 뮈토스 공연)는 테크널러 지와 능률만능의 시대에 셰익스피어의『리어왕』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를 모색하고 있다.
셰익스피어 시대의 리어가 폭풍우 치는 광야를 방황하면서 인간운명의 잔인함에 눈 떠가는 존재라면『타임리스 리어』의 리어는 자신이 창안한 대량생산의 시스템에 의해 축출 당한 몰락한 자본가이다. 이 해석을 위해 작자는 올더스 헉슬리의『멋진 신세계』를 차용한다. 인간의 인공부화 및 수태조절이 완벽하게 이뤄지는 이 가공의 시대에서 리어의 두 아들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혈족간의 연대감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철저한「능률인」으로 변모한다.
원작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성)을 바꾼 것도 이 작품의 새로운 시도중의 하나다. 그래서 리어는 여성으로 나타나고 그의 세 딸들도 세 아들로 바뀌어 등장한다.『여성적인 감성으로 원작을 뒤집어 읽고 싶었다』는 연출자 오경숙씨의 말대로 이 시도는 단순한 흥미유발의 차원 이상으로 보인다. <임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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