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기고 떠난 이 지점장/수천억 예금 몰고 다닌 수완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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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나타난 재산 아직은 집 2채뿐/직원들 “함께 일하고 싶은 상사”
금융계·사채시장에 엄청난 폭풍을 「유산」으로 남기고 자살한 상업은행 명동지점장 이희도씨(53)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금융계의 촉망받는 엘리트에서 하루아침에 비리의혹의 장본인으로 생을 마감한 그의 행적과 생활주변이 8백50여억원이란 거액의 행방과 관련,새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금까지 이씨에 대해 알려진 것은 「수천억원대의 예금고를 몰고 다니는 수완가」로서 「인천 갑부의 아들」이라는 것 정도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 지점장의 확인된 재산은 서울 방배동 올림픽선수촌아파트 64평 복층형 1채,불광동에 있는 대지 76평·건평 50평짜리 3층주택뿐인데다 올림픽선수촌아파트는 10월22일 W전기의 S상호신용금고 채무에 대한 담보물로 최고 7억원 한도 근저당이 설정된 것으로 등기부상에 나타나 있다. 이 근저당 설정에는 역시 이 지점장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인천시 용현동 토지로 공동담보로 제공되어 있으나 소유관계는 확인이 안된 상태.
일부에서는 집까지 담보로 제공한 것으로 미뤄 이 지점장이 W전기와 「특수관계」에 있다는 추리를 하고있으나 W전기측은 『주거래은행인 명동지점에서 빌린 대출액이 총80억원을 넘어 더 이상 대출받을 수 있는 담보가 부족해지자 이 지점장이 S금고로부터 5억7천만원의 자금을 끌어다 주면서 담보로 집을 제공한 것』이라고만 설명했다.
사건후 서울 강동 가톨릭병원 이 지점장 빈소에는 W전기 외에 K증권·H상사·S리스·M식품 등 40여개 회사에서 조화가 와 평소 그의 거래관계를 엿보게 했다.
금융관계자는 이 지점장의 자살이 위조CD와 연관된 큰 뭉텅이돈 「펑크」외에 특정기업과 연관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있다.
어쨌든 이 지점장이 왜곡된 금리체계 속에서 수신고 높이기 무한경쟁이라는 우리 금융계의 비정상 풍토가 만들어 낸 희생양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며 특히 그의 인품이나 인간성에 대해서는 아까워 하는 주변인사들이 많았다.
이 지점장과 1년간 함께 일했다는 한 은행원은 『이 지점장이 생일을 맞은 직원이 있으면 퇴근전 슬며시 다가가 손에 생일케이크 교환권을 쥐어주곤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고,상업은행의 한 임원은 『이 지점장은 술·당배를 모르는 일벌레였으나 부하직원들 사이에서 「함께 일하고 싶은 지점장」으로 꼽힐 정도로 부하 사랑도 남달랐다』고 했다.
결혼을 불과 2주일 앞두고 졸지에 장인을 잃은 큰딸(23)의 약혼자 김모씨(28·회사원)는 『만나뵌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따뜻하고 겸손했던 분이었다』고 말하고 『평화로운 가정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며 비통해했다.<진세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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