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 "IAEA 대표단 곧 방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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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크리스토퍼 힐(사진) 미국 국무부 차관보는 17일 "국제원자력기구(IAEA) 실무대표단이 곧 북한으로 출발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날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의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 앞에서 기자들을 만나서다.

북한은 전날 이제선 북한원자력총국장 명의로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 앞으로 편지를 보내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동결된 우리 자금의 해제 과정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는 게 확인됐으므로 IAEA 실무대표단을 초청한다"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북한 핵시설 폐쇄.동결을 둘러싼 6자회담 당사국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이르면 이번 주 중 IAEA 실무대표단이 방북해 IAEA 사찰단 입북, 영변 핵시설 폐쇄 방안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베이징(北京) 6자회담에서 합의된 2.13 합의 중 초기 이행 조치가 급물살을 탄다는 얘기다.

고위 당국자는 이어 "영변 핵시설을 폐쇄하기까지 최소한 보름 이상 소요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우리 정부는 다음 단계로 ▶중유 5만t 지원 ▶차기 6자회담 개최 등의 후속 대책을 추진 중이다. 6자 외교장관 회담을 이르면 7월 하순께 열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BDA의 한 고위 관계자는 17일 본지 기자와 만나 "14~15일 마카오 금융감독국의 요청에 따라 중국 위안화.유로화 등 7개 통화로 예금된 2328만5041달러를 마카오 소재 포르투갈계 은행인 대서양은행의 전신환으로 바꿔 송금했다"고 밝혔다. 그중에는 영국계 은행인 대동신용은행의 600만 달러도 포함돼 있다. 그는 "북한 돈이 16일 러시아 중앙은행으로 이체 완료됐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50여 개의 북한 계좌에 있는 예금은 모두 이자와 함께 인출됐으며 나머지 3~4개 계좌에 비(非)북한인 이름으로 입금된 100만 달러 정도는 조만간 개인적으로 인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돈은 대부분 마카오.홍콩의 기업인에게 무역 중개 수수료 등으로 지급된 것이라고 한다.

◆"남북 정상회담의 여건이 무르익고 있다"=범여권의 정통한 소식통은 17일 "노무현 대통령의 정상회담 관련 발언이 변화하고 있는 것을 주목하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연초만 해도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당시 청와대 참모진은 "정상회담의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해찬 전 총리의 방북(3월 7~10일) 이후에도 노 대통령은 꿈쩍하지 않았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최근 "(임기가) 두 달 남았든, 세 달 남았든 내가 가서 도장을 찍고 합의하면 후임 사장(대통령)이 거부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상당한 변화가 느껴지는 발언이다.

이런 변화는 BDA 문제가 사실상 해결되면서 북핵 외교의 지형이 급변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 BDA 해결 과정에서 러시아는 '깜짝 놀랄 만한 긍정적 역할'(외교부 당국자의 평가)을 하면서 대(對)한반도 영향력 복원을 꾀하고 있다. 북.미 관계도 급진전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핵 상황 진전과 함께 몇몇 변수가 작용했다"고 말했다. 그중 김대중 전 대통령과 범여권 정치인들의 충고와 권유는 무시하지 못할 변수로 손꼽힌다. 또 있다. 이 관계자는 "미국이 정상회담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임기(2009년 2월) 전에 북핵 폐기, 북한 개방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남북 정상회담이 필요하다고 공감했다는 것이다. 그런 판단은 이 전 총리의 5월 방미 이후 내려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총리와 가까운 한 인사는 "남북 정상회담이 4자(남북한.미.중) 정상회담보다 더 유력하게 논의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나 외교 라인에선 "남북 정상회담을 논의할 분위기가 아직 조성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한 당국자는 "아무리 속도를 내도 'IAEA 사찰단 방북→북.미 양자 접촉→6자회담 재개→6자 외교장관 회담'의 프로세스를 7월 말까지 끝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정상회담은 8.15 광복절 이후에나 성사될 것이라는 관측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이양수 기자, 마카오=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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