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교육부 황인철 국장 얼굴 벌게진 까닭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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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 11시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5층 브리핑실. 황인철 교육부 대학지원국장이 고3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핵폭탄과 같은 말을 했다. 대학들이 2008학년도 대입에서 실질적인 내신 반영 비율을 50%로 끌어올리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황 국장의 눈과 얼굴은 벌겠고, 함께 온 김규태 대학학무과장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전날 밤을 새워 대책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돌았다.

기자들과 황 국장의 공방이 시작됐다.

"대학이 내신 실질반영비율을 50% 이상으로 유지하라는 말입니까."(기자)

"그래요."(황 국장)

"그렇다면 내신에서 기본점수를 주지 말아야 하는데…."(기자)

"주지 말라는 겁니다."(황 국장)

기자들은 황 국장의 말을 믿기 어려웠다.

"총점 1000점 만점에 내신 점수가 500점인 상황에서 기본점수가 없으면 학생들의 점수차는 0점에서 500점까지 벌어지게 되는데도 주지 말라는 겁니까."(기자)

"그렇습니다."(황 국장)

지난해 한 사립대는 내신 500점 만점에 기본 점수를 490점으로 했다. 그런데 기본점수를 없앤다면 대입에서 논술이나 수능의 영향력은 거의 없어진다. 이는 내신만으로 학생을 뽑으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기자들은 "시간을 줄 테니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라"고 요청했다.

교육부는 결국 오후 1시30분 다시 브리핑을 했다. 내신 기본점수를 주지 말라는 내용은 빠졌다. 대신 수능.논술과 비교해 내신 실질반영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들이 오전에 발표한 내용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알아차린 듯했다.

이날 브리핑은 전날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로 정부가 내신을 무력화하는 대학에 범정부 차원에서 재정적인 불이익을 주기로 한 뒤 급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룻밤 사이에 학생의 인생을 좌우할 만한 대입제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바뀐 제도의 직접 영향을 받을 학생이나 학부모.대학은 안중에 없었다.

노 대통령이 이미 "(대학들의) 내신 무력화는 고교등급제로 가는 길"이라고 규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가 대통령의 '역주행'을 가로막을 용기는 없었던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학. 언론이 우리보고 치졸하다고 반발해도 이런 수단을 쓸 수밖에 없다"는 말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2004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노 대통령은 당시 9등급인 수능 등급을 아예 7등급 정도로 만들기를 희망했다. 2005년 발표된 대통령 자문 교육혁신위원회 백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는 수능 7등급 정도였고, 9등급제를 도입할 경우에도 1등급 비율은 7%(현재 4%)였다. …안병영 교육부총리가 (9등급제와 1등급 비율 4%) 고집을 꺾지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적고 있다.

수능 등급 수를 줄이고, 1등급 비율을 크게 늘려 어느 정도 공부만 해도 좋은 등급을 받게 하자는 게 노 대통령과 청와대의 뜻이었다. 웬만하면 1등급을 준다는 것은 달콤한 유혹일 뿐이다. 안병영 당시 교육부총리는 "수능 1등급을 7%로 만들면 변별력이 크게 떨어져 학교 현장에 대혼란이 온다"고 대통령을 말린 것으로 전해진다. 교육계에서는 안 부총리가 교육정책을 놓고 청와대와 여러 차례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입제도는 대학의 경쟁력, 국가의 경쟁력과 직결되는 문제다. 이런 중요한 문제가 지도자의 정치적인 판단이나 자존심 때문에 훼손돼서는 안 된다. 청와대는 교육 현실을 좀 더 냉정하게 봐야 한다. 교육부도 청와대의 눈치만 보며 현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해서는 안 된다.

강홍준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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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

[現] 교육인적자원부 대학지원국 국장

195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