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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침몰하는 '국민연금' … 도망간 KDI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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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003년 12월 29일 여의도 한나라당사 앞. 영하의 추운 날씨, 세모(歲暮)의 거리에 쟁쟁한 학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광.박세일.안종범.나성린 교수와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한나라당 이혜훈, 윤건영 교수…. 이들은 노무현 대통령과 정치권을 질타하며 한목소리로 국민연금 개혁 없이는 재앙이 닥칠 거라고 경고했다. 이날 집회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박사도 끼어있었다. 국책연구소 직원이라는 신분이 부담스러웠지만 그는 그만큼 연금을 개혁해야 한다는 소신이 강했다.

이 박사가 몸담은 KDI는 그동안 국민연금 개혁에 주도적 목소리를 내왔다. 지난해와 올 초 KDI가 내놓은 고령화 보고서 내용은 충격적이다. '2050년에는 월급의 30%가 국민연금으로 빠져나간다' '2035년에는 연금 지급액이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능가한다'는 경고도 담겨 있다. 지난 4월 국회가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부결시키자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던 KDI였다.

이런 KDI 직원들이 최근 국민연금을 떠나 수익률 높은 사립학교교직원연금으로 갈아탔다. 노후에 한푼이라도 더 받을 수 있다면 누구라도 유리한 쪽으로 옮기는 게 인지상정이다. 평균수익 비율(돌려받는 연금액/납부한 보험료 총액)만 봐도 사학연금이 3.53~3.88로 국민연금의 2.22보다 많이 높다. 0.1% 금리차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세상에,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다. "국책연구기관의 우수 인재들이 사립대 교수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KDI 측 설명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남은 사람의 심정도 헤아려야 하지 않을까. 속수무책으로 국민연금에 남게 된 일반 사람들은 KDI의 변신에 서글퍼진다. KDI는 국민연금 도입 때 연금 구조를 설계하고 만들었던 기관이다. '더 내고 덜 받는' 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호소한 장본인이다. 그런 KDI가 뒤로 슬그머니 사학연금으로 갈아탄 대목에 배신감까지 느낀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이번 일은 근본적으로 차별적인 연금제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 1700만 명의 국민 대다수는 국민연금에 목을 맨 찬밥 신세고, 공무원.교직원.군인 등 140만여 명의 특수직역 종사자들은 따뜻한 연금혜택을 누리고 있다. 이러고도 정부가 국민연금을 믿어달라고 할 염치가 있을까. KDI의 변신을 탓하기에 앞서 정부의 무신경이 더 서럽다.

다만 KDI의 "사학연금으로 갈아타는 데 법적인 문제는 없다"는 공식 반응은 이별사치고는 너무 야박하다. 남은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미안하다. 우리 잇속만 챙겨서…"라는 위로의 말쯤은 던져야 하지 않을까.

윤창희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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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한나라당 국회의원(제17대)
[現] 한나라당 수석정조위원장

1952년

[現] 한나라당 국회의원(제17대)

1964년

[現] 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학 경제금융학부 교수
[現] 안민정책포럼 회장(제4대)

1953년

[現] 성균관대학교 경제학부 경제학전공 부교수

1959년

[現]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前] 한나라당 국회의원(제17대)

1948년

[現] 한국외국어대학교 상경대학 경제학과 교수
[前] 보건복지부 장관(제34대)

194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