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근 대구식약청장 "소림사 영화 보다 호랑이 보법 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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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보법을 만든 이준근 대구식약청장이 사무실 인근 와룡산에서 호보 자세를 해 보이고 있다. 사진=신상응 인턴기자

"여러가지 운동을 해 봤지만 대부분 한두 가지 약점이 있어요. 테니스는 한쪽 팔을 많이 써서 밸런스가 문제고 등산은 무난하지만 상체 운동은 거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이상적인 전신운동입니다."

호랑이처럼 걷는 호보(虎步)를 창시한 이준근(李俊根.58) 대구식품의약품안전청장은 이 낯선 운동을 만든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집무실 한쪽에 흙 묻은 등산화 세 켤레와 자전거가 놓여 있다. 운동이 습관화된 게 단번에 느껴진다.

"동작은 간단합니다. 네발 짐승처럼 양팔을 땅에 짚고 걸어가면 됩니다. 유의할 건 무릎이 바닥에 닿아서는 안되고…."

이 청장은 자세를 해 보이고는 손바닥 대신 손등을 바닥에 대고 걷기도 했다. 고루 근육을 쓰기 위해서다. 그러고 보니 그의 양쪽 손등엔 호보의 연륜을 말해 주는 굳은 살이 불룩하다. 걸음은 호랑이 방식이다. 앞발을 뗀 자리에 뒷발을 놓으며 일자(一字) 로 나아간다. 고양이과 동물의 보행법이다.

사무실을 나와 5분 거리의 와룡산으로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이 청장이 점심시간이나 저녁에 들러 호보를 하는 장소다. 등산화를 신고 손에는 바닥에 빨간 고무를 입힌 면장갑을 꼈다. 준비는 그게 전부다. 대구 사무실의 동료 직원 네댓명도 배가 들어가고 혈압이 떨어진다며 자주 그를 따라 배운다고 한다.

오후 3시. 그는 엎드려 가파른 나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느라 오르고 내리기를 10여분. 얼굴에서 땀이 비오듯 뚝뚝 떨어진다.

"39년째 산에서 운동장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했습니다. 비가 오면 우의를 입고…. 덕분에 약은 먹어 본 적이 없어요."

이 청장은 매일 8㎞ 정도 호보를 한다. 점심 먹고 40분, 퇴근 뒤 한 두 시간을 투자한다. 그는 호보 예찬론을 폈다. 호보는 완전한 전신운동이란 것이다. 체중은 분산되고 갑자기 힘을 쓰는 일도 없다. 팔을 딛고 걸어 상체는 물론 내장이 운동돼 오장육부에 더없이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심신이 상쾌해지고 기운이 차 오른다.

이 청장은 어렸을 적부터 문무를 겸비해야 문약한 선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웬만한 운동은 다 해 보았다. 중학교 1학년때 시작한 유도는 6단 실력이다. 그렇지만 어떤 운동이든 무언가 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대학 1학년때 그는 중국 소림사 영화를 보다가 스님들이 네 발로 기는 동작을 보는 순간 '이거다' 싶었다고 한다. 고시 공부로 뇌에 산소를 공급하고 전신운동이 절실하던 때였다. 그때부터 호랑이 걸음을 동물원에서 비디오에서 유심히 관찰했다. 그리고는 걸음걸이를 흉내 내며 운동으로 실천했다.

"의사들은 사람 질병이 직립 보행에서 많이 온다고 말합니다. 원시로 돌아가 네 발로 걸으면 항문이 위로 올라가 우선 치질은 생길 수가 없어요. 디스크 예방에도 좋고. 얼마 전 허리 사진을 찍었는데 20대 초반 같다는 겁니다. 몸속 장기도 네 발 자세 때 제자리를 잡아 위장병에 좋답니다."

그는 운동에서 꾸준함을 강조한다. 자신과 싸우며 꾸준히 운동해야 건강도 지키고 살도 뺄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정상적으로 노력하지 않고 쉽게 살을 빼려다 잘못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운동한 뒤 흘리는 땀과 사우나로 흘리는 땀은 전혀 다릅니다. 건강도 살빼기도 노력한 만큼 따라오는 법입니다."

그는 외국 출장 때도 호보를 계속한다. 중국 베이징 출장 때 호보할 곳이 마땅치 않아 호텔 계단에서 하다 경비원의 제지를 받은 적도 있다. 1995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정부 파견 시절엔 숲속에서 호보를 하다가 이상한 행동을 보고 주민이 신고하는 바람에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그는 그때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자신의 운동일 뿐'이라며 당당히 주변을 설득시켰다.

그는 마음 수련도 곁들일 것을 강조한다. 몸과 마음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틈만 나면 결가부좌한 채 단전호흡을 하며 유불선 서적을 탐독한다.

호보법은 그동안 꾸준히 알려져 동호인도 수천명에 이른다고 한다. 84년 미국 유학 시절 유도 동호회에서 만난 미국인 쿠퍼(49)는 수제자 격이다. 좋다 싶어 아들(26)과 딸(25)에게도 호보를 가르쳤다.

그는 이제 나름의 호보 이론을 정립했다. 시작할 때는 500m 정도만 걷고 단계별 난이도도 터득했다. 이 내용은 곧 책으로 정리할 계획이다. 또 공직을 물러나면 호보법을 본격 보급하는 일에 전념할 구상도 하고 있다.

와룡산 옆 운동장으로 다시 장소를 옮겼다. 그는 운동장에서 다시 땀을 흘리며 빠른 속도로 걸었다. 한 시간에 5~6㎞를 간다고 한다. 단조로워 재미가 없지 않느냐고 물었다.

"힘들게 올라 산 정상에 닿으면 순간 아주 상쾌하지 않습니까. 호보를 하고 나면 꼭 그런 기분입니다. 일종의 중독이죠. 그 맛에 계속합니다. 1년 내내 그런 기분으로 살아요. 한번 해 보세요."

대구=송의호 기자, 사진=신상응 인턴기자

<호보 tip>

◆호보, 이게 좋다

.전신운동이다

.혈액순환에 좋다

.부작용이 없는 운동이다

.치질.디스크.위장병.관절염에 좋다

.동작이 단순해 누구든지 할 수 있다

◆호보, 이렇게 시작하라

.무릎이 바닥에 닿지 않도록 하라

.고개는 너무 들지 말고 자연스레 바닥을 보라

.처음에는 하루 500m 정도를 걸어라

.매일 하는 게 중요하다

.산.운동장 같은 흙이나 잔디에서 하라

.1주일 정도 하면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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