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허구 구분 소멸-광고도 「포스트모던」시대|서울대 강명구 교수 지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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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80년대 말부터 국내 문화예술계에 일대 유행하기 시작한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즘 사조는 이제 TV의 상품광고에도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그러나 포스트 모던한 우리나라의 TV광고는 그 사조가 대변하는 세계관이 결여된 겉 모방 베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서울대 신문학과의 강명구 교수는 계간 『이론』가을호에 실린 논문 「포스트 모던 광고의 상품미학비판」에서 TV광고의 포스트 모던한 특징을 분석한뒤 이같이 지적했다.
강 교수는 포스트 모더니즘기법의 특징을 뒤섞임과 해체로 보고 그에 해당하는 대표적 광고의 예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현실공간과 허구공간의 파괴-시네마 TV광고는 텔리비전 영상의 표현력과 고도의 음질을 표현하기 위해 현실공간과 허구공간의 구분을 파괴하는 시각적 충격을 소비자에게 제시한다.
독수리가 TV화면에 비치는 앵무새를 자신의 현실공간에 있는 것으로 착각해 앵무새를 잡으러 TV화면 안으로 들어가고 앵무새가 화면 밖으로 나오는 장면은 영상의 허구적 공간과 현실공간이 역전되는 기법을 보여준다.
◇영상내의 영상-미스 미스터의 구두광고는 광고 안에서 또 다시 TV광고가 나오고 모델은 이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광고 밖에 나와있다.
광고모델은 소비자와 마찬가지로 광고 안의 광고를 밖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소비자는 광고모델과 동일한 현실감을 느끼게 되고 허구를 구분하는 현실감각에 혼란감을 갖게 된다.
◇서술구조의 해체-파편화된 이미지-메르꼴레디·끄레아또레의 여성복 선전은 14개의 커트로 구성돼 있으나 장면의 의미와 줄거리가 모호하다.
『논리가 아니라 직관적인 감각으로 느끼기를 원한다』는 제작자의 말처럼 의미 없는 듯한 기호가 무질서하게 사용되고 있다.
◇수용자가 개입하는·서술구조-남성 내복 트라이 광고에서는 모델이 엘리베이터의 닫힌 문을 손바닥으로 치는 이유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광고의 내용은 이것이다」라는 전통적 서술구조를 벗어나 소비자의 상상력을 자극함으로써 그를 광고물의 해석공간 안으로 끌어들인다.
강 교수는 『이같은 광고는 외양에 있어서는 반형식, 서술구조의 파괴, 현실과 허구의 뒤석임 등 포스트 모던한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서구 포스트 모던 문화의 특징인 기존의 세계를 거부하고 부정하는 냉소적이고 「유토피아 없는 미래주의」의 세계관은 없다』고 진단하고 『한국에 이린 기법이 도입된 이유는 광고를 차별하하기 위한 새로운 표현 양식으로서 일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배태한 서구 선진 자본주의 문화와 한국 문화는 사회·경제적 조건이 판이하게 다르므로 일부의 기대처럼 이 새로운 사조가 기존의 불평등한 사회조건에 대한 저항의 가능성으로 작용할 수 없는 것』이라며 『TV광고에서 보이는 현재의 상황은 포스트 모던 소비문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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