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벽에 부닥친 “야심”/김우중회장 “출마포기” 결심까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대우정리 어렵고 여론 안좋아/외압설속 과시·위협용 관측도
김우중대우그룹회장은 「출마」 야심은 강했으나 현실의 한계때문에 불출마쪽으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희박한 당선가능성,어려운 기업사정,촉박한 시간,부정적 여론 등 여러가지 압박요인속에서 무척 고민해온 것 같다.
○…김 회장의 후퇴조짐은 25일 아침부터 나왔다. 이른 시각 그와 만났던 이종찬의원은 이날 저녁 김 회장이 털어놓았다는 어려움을 소개하면서 『(그의 출마가 어렵다는 쪽으로 감을 잡았다』고 해 기류변화를 시사했다. 이날 낮 여권의 고위소식통은 『청와대는 김 회장이 출마를 포기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며,여권핵심인사들도 이런 상황변화를 알고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24일 낮 그와 접촉한 김용환의원은 기존의 50대 50(김 회장 출마전망)론에서 후퇴해 『30%쯤 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와 출마포기는 「비즈니스맨」다운 계산의 결정이라는 시각이 많다. 그는 접촉인사들에게 『이번에 당선이 어렵겠지만 그래도 나간다. 나는 차기를 노린다』고 말해왔지만 그런 모험을 하기엔 현실적인 제약이 너무 크다.
우선 평생과업인 대우가 경영상 좋지 않아 대우로 훌쩍 떠나 대선에 뛰어들 수가 없는 사정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종찬의원에게도 『(출마한다고 볼때) 경영인 입장에서 주변정리가 안돼 난처한 입장』이라며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제2정주영」이란 눈총속에서 「국민후보」가 되려면 대우와 관계를 끊어야 하는데 시간적으로,경영현실로도 거의 불가능한 형편이었다고 보여진다. 그는 여론의 무게도 만만치않게 느꼈다고 전해진다. 그가 지닌 「젊고(50대) 개혁적인」이미지에도 불구,또 재벌이 나서는가라는 여론이 비등해졌다. 고위정계소식통은 『그가 이번에 출마해 만약 대우가 심하게 흔들거리면 그는 차기를 노릴 수 있는 발판이 없어진다』고 분석했다. 김 회장은 「재벌정치 참여」에 대한 반감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동조세력에 대한 그의 계산에도 차질이 빚어진 듯 하다. 대우 신당설이 번졌던 초여름부터 그는 『여야에서 현역 50∼60명을 끌어낼 수 있다』는 공상같은 구상을 가져오다 최근 들어 두터운 벽을 느꼈다. 9∼10월에 그를 만난 민자당의원들은 『그는 비현실적인 계산에 빠져있었다』고 했다.
본인의 상황판단도 중요하지만 청와대·민자당·재계·주변인사등으로부터 몰려오는 「포기」 압력도 상당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김영삼총재는 참모진에게 『김 회장 문제는 내게 맡겨달라』며 함구령을 내렸었다. 관측통들은 김 총재가 평소의 스타일로 보아 강력한 「만류」메시지를 김 회장에게 보낸 것이 틀림없고 이 과정에서 청와대측과도 교감이 있었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진단하고 있다.
강력한 출마징후를 보였던 김 회장이 발을 빼자 출마신호가 본뜻이라기 보다는 존재과시용 내지는 위협용이 아니었을까라는 의심도 적지않다. 일부 정·재계 관측통들은 양김구도정치권과 국민당·현대그룹 등에 『여차하면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이고,국민에게는 차기후보감중 한명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도 손해는 아니지 않느냐는 생각을 그가 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김 회장이 불출마쪽으로 마음을 굳혀가는데는 새한국당(가칭) 내부의 부정적 시각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신당 창당발기인대회 다음날인 24일부터 김 회장 출마설이 나돌자 신당핵심인사인 이종찬·박철언의원과 오유방 전의원 등이 부정적 입장을 취했고 특히 사무국 요원들은 일손을 놓은채 집단반발하는 양상마저 보여왔다.
이·박 의원 등이 김 회장의 후보추대에 부정적인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이들은 무엇보다 재벌총수가 갖는 부정적 이미지와 국민당과의 연대 모색에 장애가 된다는 점을 표면에 내세워 왔다. 김 회장 출마설이 나돈 직후 이 의원은 『김 회장의 경우 후보로서의 압축대상도 아니다』고 잘라 말할 정도였고 박 의원 역시 새정치의 진로에 김 회장의 참여가 도움이 안될 것이란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같은 이·박 의원의 입장은 그들의 정치적 목표나 이해관계와도 무관치 않다. 이들은 그동안 나름대로 대권의 꿈을 키워온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에는 승산이 없어 다음 기회를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김 회장이 신당에 들어올 경우 잠재적 라이벌이 되는 셈이어서 이를 원치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반면 이자헌·김용환·장경우의원 등 김 회장 영입에 적극적인 세력들의 입장은 다르다. 이들은 강영훈 전총리·박태준의원 등의 후보추대가 어려운 현 상황에서의 대안부재론을 내세우고 있다. 이들은 김 회장의 경우 정주영후보보다 단점이 적은데다 창당자금은 물론 막대한 선거자금확보를 위해서도 좋은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어차피 시일이 촉박한데 막강한 자금력으로 신당의 집을 그럴듯하게 지어야 추가로 합류한 손님(의원)도 있을 것이고 폭발력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을 깔고 있다.
김 회장의 불출마 의사표시로 신당세력들은 강 전총리와 박태준 전민자당최고위원 등의 영입에 주력한다는 계획이지만 이들이 끝내 고사할 경우 이종찬의원을 내세우자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 역시 이론이 많아 신당의 후보추대문제는 앞으로 상당한 진통을 겪을 전망이다.<신성호·김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