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정국혼란 동남아/문화재 밀반출 “극성”(지구촌화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전직 군인·관리가 밀매 앞장/캄보디아 앙코르 와트 유물 등 서구로 빼내
미얀마·캄보디아 등 동남아 각국의 주요 문화재들이 정치적 혼란을 틈타 마구잡이로 국외로 불법 반출되고 있어 각국이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과거 아시아지역 문화재를 무분별하게 사들였던 서구 각국의 주요 박물관에 협조를 요청,『출처가 모호한 문화재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확약을 받았으나 무수히 많은 소규모 박물관까지는 힘이 미치지 못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동남아 각국 문화재 관리당국에 잡힌 문화재 불법유출 사례를 보면 규모나 가치면에서 실로 심각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지난 2월 파키스탄에서는 석가모니를 시기별로 그린 부처상 11점을 싱가포르로 빼돌리려던 일당 5명이 체포됐다. 또 같은달 태국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 선적 선박 1척이 샴만에 침몰된 고대 선박에서 불법으로 건져낸 문화재 1만여점을 싣고 나가다 적발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태국 국경경찰이 캄보디아의 고대사원 앙코르 와트 등에서 훔친 인물상 12개를 싣고 가던 문화재 밀반출단을 체포했다.
물론 이번 적발사례는 각국의 문화재 보호노력의 결실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문화재 전문가들은 오히려 문화재 유출이 더욱 극성을 부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지적하고 있다.
미얀마·캄보디아와 접하고 있는 베트남과 태국의 문화재 암시장에는 앙코르 와트 등에서 불법적으로 흘러온 문화재들이 넘친다. 특히 캄보디아가 문화적 자존심으로 내세우는,9세기에서 12세기에 걸쳐 건축된 앙코르 와트에서 나온 문화재들은 한결같이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것들이다.
또 불법문화재 매매에 아무런 법적 제재를 가하지 않는 싱가포르의 경우 인근 국가는 물론이고,멀리 중국이나 파키스탄에서도 문화재들이 불법적으로 유입되고 있다.
이렇게 흘러 나온 동남아지역 문화재들의 주요 고객들은 서구의 소규모 박물관과 문화적 안목이 부족한 투자가,수집가들이다.
한때 동양문화재 구입에 열을 올렸던 유명박물관들은 유네스코(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 등이 나서서 세계문화재 보호운동을 펼침에 따라 동양문화재의 경우 출처확인에 특별히 신경을 쏟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난한 농민들이 소량으로 문화재를 불법 유출하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전직 군인들이나 관리들이 조직적으로 문화재를 유출하고 있어 불법유출 경로를 차단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태국의 한 문화재 보호관계자는 전직 장관이 북부의 치앙마이에서 문화재 불법유출 조직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현지 관리들이 조직에 매수됐기 때문에 단속의 손이 미치질 못한다고 실토했다. 또 캄보디아에서는 유엔 주도의 평화정착 과정에서 실직한 전직 군인들이 대거 문화재를 외국으로 빼돌리고 있다.<정명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