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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군복무 기피증 없애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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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산업 기능요원 병역특례 비리가 불거지면서 병역의 형평성 문제가 다시금 도마에 올랐다. 우리나라의 병역제도가 지원병제라면 형평성 논란이나 병역과 관련한 비리가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100만 명 이상의 북한군과 총구를 맞대고 있는 현실적 안보상황이나 우리나라의 경제력, 그리고 국민의식 등을 고려해 볼 때 앞으로도 상당 기간 국민개병제 원칙은 유지해야 한다.

그동안 국방부나 병무청이 중심이 돼 병역비리를 없애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 왔다. 이에 따라 징병검사나 부대 배치 등에서 병역비리를 줄이는 데 큰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능 인력에 대한 병역특례가 악용되었다. 병역비리 수법이 점점 더 교묘한 방식으로 변형되고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병역비리를 예방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열 경찰이 한 도둑 못 잡는 격이다.

병역비리가 발생하면 국가의 부름을 받고 묵묵히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대다수 청년과 가족들은 심한 허탈감과 박탈감을 느낀다. 이는 장병들의 사기에 악영향을 끼쳐 궁극적으로 군대를 약하게 만든다. 따라서 병역 비리에 악용된 불합리한 병역특례 제도를 시급히 정비해야 한다.

하지만 '군복무 기피증'이 치유되지 않는 한 병역비리 소지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병역비리 방지 대책만으로는 병역비리를 없앨 수 없다는 논리다. 병역비리에 대한 채찍 정책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반대 방향의 정책, 즉 군대에 입대하는 청년과 가족들이 군복무에 긍지와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 당근 정책을 지속적으로 개발해야 군복무 기피증이 줄어들고 병역 비리가 근원적으로 사라질 것이다.

군복무를 기피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군복무가 학업과 취업의 기회를 박탈한다는 점이다. 올해부터 2014년까지 8년에 걸쳐 6개월간 현역 복무 기간을 단축하는 병역제도 개선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복무기간 단축과 함께 훈련.정비.교육.근무 시간을 효율화하고, 확보된 개인 시간은 자기 계발에 적극 활용하도록 장려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군복무 효율화와 더불어 병영시설이나 근무 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시급하다. 아직도 내무반.화장실.급수시설.냉난방 등 기본 생활시설조차 열악한 부대가 상당수다. 물론 국가 예산으로 병영시설을 고급 아파트처럼 만들 수는 없을 것이며, 병영에서의 문화생활이 사회 수준을 따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병영에서 충족하지 못하는 병사들의 지적.문화적 욕구를 외출.외박.휴가 시에 쉽게 보충할 수 있는 제도를 창안해야 한다. 영화.연극.출판.음반 등 문화산업을 비롯해 교통.음식.숙박.여행 등 사회 각 분야에서 '현역병 특별할인제도' 같은 것을 활발하게 개발할 필요가 있다.

병역 이행을 사회 공헌으로 인정하는 풍토가 부족한 것도 군복무에 냉소적인 또 다른 이유다. 설령 병역 이행자 모두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지 못하더라도 군복무의 노고를 인정하는 상징적인 제도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적극적으로는 군사훈련 과정에서 체득한 기술이나 능력을 인증해 자격증을 부여하는 방안이 있다. 나아가 폐기된 군복무 가산점 제도를 합헌 범위 내에서 수정해 부활시키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물론 병역 이행자 우대 제도는 군복무 대상에서 제외되는 여성과 장애인 등을 불합리하게 차별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마련해야 한다. 불가피하게 현역 복무를 하지 못하는 남성도 배려할 필요가 있다. 현재 연구되고 있는 '사회복무 제도'를 병역비리에 이용될 수 있는 또 다른 특례제도로 변질되지 않도록 유의해 개발한 다음, 사회복무 이행을 군 복무와 동일하게 대우하면 된다. 요컨대 사회가 장병들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병역을 이행하는 장병들을 존중해야 병역비리 없는 강한 군대를 유지할 수 있다.

김병조 국방대 교수·국제관계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