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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실이 부부의 초보 요리방] 찜질방 식혜야, 앙실이 맛 좀 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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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면

"야호, 개운하다."

"칫, 개운하긴…. 찜질을 제대로 하지도 않았으면서."

"무슨 말씀을? 불가마 출입 2번, 에스키모방 1번, DVD 영화방 두시간, 거기다 샤워까지. 이 정도면 돈이 아깝지 않지."

"참말로 기가 막혀서, 찜질방이라고 가서는 불가마는 달랑 두번, 그것도 3분도 못 견디고 나왔으면서. 그러곤 여기저기서 시체처럼 뒹굴거리다가 식혜만 세그릇씩 마시고 땀 많이 나왔다고 뿌듯해하니…, 츠츠츠. 그렇게 마셔대니 땀이 안 나올 리도 없지."

"그래, 나 식혜 마시러 찜질방에 간다. 그러니깐 앙실이 니가 식혜 좀 만들어줘라. 응?"

식혜는 예로부터 잔치나 설날 같은 명절에 즐겨 마시던 전통음료. 요즘은 이런저런 식품회사에서 깡통에 든 제품을 판매하고 있지만 직접 만든 것보다 맛이 덜하다.

'재료라곤 밥알밖에 없는 것 같은데 한번 도전을 해볼까?'

이참에 꼼꼼이의 입에서 "식혜를 너무 먹어서 더는 못 먹겠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먹여볼 결심까지 했다.

밥만 있으면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던 식혜. 그러나 친정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사전 조사를 한 결과 엿기름이라는 것이 필요했다. 밥알을 삭혀 단맛을 나게 하는 역할은 한단다.

수퍼마켓에 가니 역시 엿기름이란 걸 팔고 있었다. 엿기름을 사다가 살살 씻었다. 아니 살살 씻으려고 노력을 했다. 그동안 멥쌀을 찜통에 쪄야 하는데, 젖은 행주를 깔지 않고 마른행주를 깔아서 그런지 아니면 뭐가 잘못되었는지 쌀이 딱딱했다.

'이런, 낭패다'.

이래저래 헤매고 있는데 "잘 돼가니~?" 하며 능청스럽게 묻는 꼼꼼이의 목소리.

"으으응."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적당히 대답하곤 수퍼마켓으로 달려갔다.

"아줌마, 엿기름이 이상한지 식혜가 잘 안 되네요."

"아니, 엿기름을 사간 지 얼마나 됐다고???"

"사실 그게 아니라, 여차저차…, 쫑알쫑알…."

"에그, 식혜밥을 잘못 했구먼, 그러지 말고 그냥 맨밥에 이것을 넣어 만들어 봐요."

이것??? 농협에서 개발한 엿기름 제품인데 쌀밥과 함께 물을 부어 전기밥통에 넣어두기만 하면 맛있는 식혜가 만들어지는 마법의 제품이란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정말 구세주를 만났다.

한 상자에 2천4백원. 아까 사려다가 까먹은 우유도 한 통 사들고 보무도 당당히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에 들어서자 "어디에 갔다 왔어?"하면서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 꼼꼼이에게 "으응, 우유 사러-"라고 답하곤 재빨리 냉장고에 있던 찬밥을 꺼내 전기밥통에 넣고 생수도 부었다. 물론 나의 구세주도 함께. 8시간 보온 예약을 해놓고 난 뒤 뿌듯한 마음으로 소파에 가 TV를 보는 꼼꼼이 옆에 다정하게 앉았다.

의아하게 바라보는 꼼꼼이. "식혜 만들어준다더니…, 포기했어?"

"식혜가 금방 만들어지나, 내일 아침에나 먹을 수 있을거야."

"엥, 내일 아침이나?"

"그래, 다 만들어놨으니 기다리기만 하면 돼."

다음날 아침 다른 날보다 서둘러 일어나 전기밥통을 열어보니 밥알들이 귀엽게 동동 떠있었다.

'이야-, 성공이다'.

커다란 냄비에 옮겨 붓고 설탕 약간 넣고 한소끔 끓이니 식혜 완성. 식혀야 되므로 그대로 두고 출근을 했다.

저녁 때 식혜 때문인지 먼저 퇴근한 꼼꼼이에게 휴대전화가 왔다.

"앙실아, 캡 맛있어. 짱이야 짱, 정말 이거 네가 만든 거 맞아?"

"흠흠, 당근이쥐. 어때 찜질방 식혜 못지 않지? 앞으론 찜질방에 갈 돈을 날 주면 내가 식혜 배 터지게 먹게 해줄게. 푸하하하."

사진=변선구 기자

*** 재래식 식혜 만들기

▶재료 =멥쌀 1컵, 엿기름 1컵, 물 8컵, 생강 10g, 설탕 1컵, 잣 1작은술

▶만드는 법= ① 엿기름을 미지근한 물에 풀어 웃물이 맑아질 때까지 3시간 정도 그대로 둔다. ② 멥쌀은 김이 오른 찜통에서 젖은 행주를 깔고 찐다. ③ 엿기름의 웃물을 가만히 따라내 찐 밥과 섞어 5시간 정도 보온밥통에 둔다. ④ 밥알이 삭아 위로 떠오르면 망으로 건져내 냉수에 씻어 둔다. 남은 물은 냄비로 옮겨 붓고 설탕과 생강을 넣어 한바탕 끓인 뒤 식힌다. ⑤ 먹기 전에 밥알과 잣을 띄워 낸다.

*** 간단한 식혜 만들기

▶재료=쌀밥 1공기, 엿기름 5봉지, 생수 1ℓ, 설탕 적당량

▶만드는 법=전기밥통에 밥과 물과 엿기름 봉지를 함께 넣고 보온 상태에서 8시간 정도 둔다. 8시간 후 밥알이 몇 알씩 떠오르기 시작하면 냄비로 옮겨 담아 한소끔 끓여낸 뒤 설탕으로 입맛에 맞게 간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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