헷갈리게 하는 대북정책(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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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 적발된 북한의 대규모 간첩단사건은 북한이 아직도 우리 체제를 파괴하려 하고 남북간에 합의된 협정들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음을 명백히 증명했다. 이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한나라의 국가체제를 파괴한다거나 당국간에 합의된 협정사항을 고의적으로 위반하는 상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는 자명한 일이다. 그같은 태도가 근본적으로 수정되지 않는한 대화나 협력은 불가능하고 어떤 의미에선 불필요하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정부는 간첩단사건이 발표되던날 남포조사단을 북한에 보냈다. 남북간에 약속된 사항이기 대문에 예정대로 보낸 것이라는 설명이지만 남북한간 기본합의를 어긴 사건의 중대성에 비추어 균형이 맞지 않을뿐만 아니라 국민정서에도 어긋난다.
그후 정부는 통일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대북비난성명을 발표해 북측의 사과를 요구하고 최각규부총리의 방북계획을 연기시켰다. 우리는 북한과의 대화는 계속하되 협력과 이를 위한 상호교류는 일단 유보하고 북한으로부터 정부차원의 공식사과를 받아내야 한다고 본다. 대화도 당분간은 북의 잘못을 규탄하고 사과를 받아내는 수준으로 한정하는 것이 좋겠다. 북의 사과에는 간첩활동에 대한 협정위반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담겨야 한다.
우리체제를 파괴하려는 세력은 우리의 적일 수 밖에 없다. 6·25는 무력에 의한 체제파괴의 위협에 직면해 우리가 체제를 지키기 위해 싸운 전쟁이다. 다행히 우리는 우리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체제를 수호하는데 성공했고,다시 이 체제를 발전시켜 북한의 공산주의체제보다 우월함을 명백히 입증해 놓았다. 이렇게 우월하다고 입증된 체제를 열등한 체제가 다시 파괴하려는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남북기본합의서는 체제의 상호존중을 포함해 남북간 평화공존과 협력증진에 대한 광범한 약속을 담고 있다. 그런데도 북한은 이 합의서가 정식으로 공표·발효된 이후에도 이 합의서를 어기면서 우리체제의 파괴를 기도한 것이다.
정부는 북의 정식사과를 받아내기까지는 단호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기존의 대화가 상당기간 중단되는 한이 있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대화자체가 무의미해질 뿐만 아니라 합의가 이뤄진다해도 언제 또 위반하려들지 모른다.
우리는 북한의 태도가 믿음직스럽지 않더라도 우리쪽에서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접근하는게 장기적으로 우리측에 유리하다는 유화론에도 일리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러한 접근방법은 국민을 납득시키기 어렵다.
정부는 대북정책에 일관성을 유지하되 북의 약속위반을 응징하는데 보다 단호하고 준엄하게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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