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한시… 짐무거운 “실험내각”/현승종총리 내정과 새 내각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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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공정한 선거관리가 최대 숙제/집권당 받침 없어 약체우려도
노태우대통령이 7일 현승종한국교총회장을 신임총리에 지명함으로써 헌정 사상 보기 드문 중립적 선거관리 내각이 출범하게 됐다.
노 대통령의 집권당 탈당에 이어 출범하는 현 총리의 중립내각은 관권선거를 없애고 공정선거를 정착시키겠다는 9·18조치의 구체적 실천사항이어서 국민적 기대감이 적지 않지만 처음으로 시도해 보는 시험무대라는 성격 때문에 많은 우려가 뒤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국회의 총리인준절차(8일)와 내각총사퇴­총리제청 형식의 개각이 단행된 뒤에야 내각의 성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겠지만 우선 현 총리서리 임명에서 중립성이 특별히 강조됐음을 읽을 수 있다.
현 총리서리는 현재 한림대총장과 한국교총 회장을 맡기까지 줄곧 교육계에만 몸담아와 그동안 어느 정권·정부와도 연을 맺거나 일을 한 적이 없는 인물이다.
각 정당에서도 현 총리서리의 「중립성」엔 전혀 이의를 달지 않았을 뿐더러 그의 덕망을 들어 한결같이 환영하고 있다.
현 총리서리는 이북 출신으로 지역적으로도 「중립」성을 지녔다 하겠다.
그러나 현승종 내각은 당적 없는 대통령하에서 여당의 강력한 뒷받침을 받지 못하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아울러 선거관리를 위한 한시적 내각이다.
이같은 중립·한시적 성격은 자칫 약체내각으로 연결될 소지가 많다.
현 총리서리는 앞으로 그야말로 중립적 입장에서 12월 대통령선거를 관리해야 하며 한편으론 4개월 남짓한 노 대통령의 임기말 국정마무리를 담당해야 하고 대선후 차기정부에 인수인계 등 많은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쉬운게 없다.
대통령선거는 어느 때보다 과열경쟁이 뒤따를 것이란게 일반적 예상이고 이미 임기말 레임덕 현상이 곳곳에서 봇물터지듯 벌어져 벌써부터 심각한 문제점이 되고있다.
여기서 새 내각이 중심을 잡지못하고 약체의 부정적 요소만 부각될 경우 정국은 겉잡을 수 없이 표류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게 새 내각을 바라보는 많은 이들의 우려다.
다만 이번 내각 출범이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각 정당들도 다투듯 협조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같은 우려를 다소 씻게하는 것도 사실이다.
각 정당과의 협조·협의체제를 잘 유지하고 운영의 묘를 살리면 정치발전을 진일보 시키는 일대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게 많은 이들의 바람이다.
단명총리라는 한시성도 어찌 보면 「소신행정」을 펼 수 있으므로 생각하기에 따라선 총리권한을 강화시키는 항목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앞으로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각 당의 당리당략이 첨예하게 대립할게 뻔해 이를 어떻게 적절히 조정하고 중심을 잡아가느냐가 최대과제로 꼽히고 있다.
민자당이 집권당의 프리미엄을 버렸다고 하지만 오랜 타성 등에서 정부측에 의지하려는 행태가 재연될 가능성은 높다. 바로 이 대목에 대해 민주·국민당 등 여타 정치세력들은 의혹의 눈초리를 게을리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국민당측은 「여당화 돼있는 공무원의 중립을 완전보장하라」「관변단체들의 선거개입을 차단하라」는 등 이미 공세를 시작하고 있다.
중립내각이 자칫 이같은 대목에 의혹을 떨쳐내지 못하고 증폭시킬때 정국표류는 가속이 붙을게 틀림없다.
여기서 내각의 보다 단호한 의지와 함께 각 정당의 차원높은 협조체제도 요구된다 하겠다.
국정의 계속성을 어떻게 살려나가느냐 하는 점도 과제중의 하나로 꼽힌다.
비록 개각폭을 선거 관련부처로 국한시키고 경제부처는 경질대상에서 제외시켰다고는 하지만 중립내각으로 새로 구성됐다는 상징성 때문에 자칫 행정수행에 공백이 생길 수 있고 그에 따른 절름발이 국정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임기말 현상으로 공직자들의 기강해이·근무태만이 문제되고 있는터라 행정공백이 겹쳐 초래될 폐해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새로 시도되는 이번 중립내각은 운영하기에 따라 선거풍토 개선과 차치정권의 정통성 확립·선거공정성 시비불식 등 정치를 한단계 발전시키느냐,아니면 정국표류로 전락하느냐의 중대 기로가 될수도 있어 그 임무가 막중하다 하겠다.<허남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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