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협 북측실세/김달현인가,최정근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부·기업,정보수집·저울질 한창/서로 다른 창구로 우리 경제인 잦은 접촉/김 정부간접촉,최 기업상대 2원화 관측
「김달현」(무역부장겸 대외경제위원회 위원장)이냐,아니면 「최정근」(고려민족산업발전협회장겸 광명성총회사 이사장)이냐. 최근 북한과의 직접 투자 내지 교역을 추진하려는 남한 기업들은 남북경협에 있어 북한측의 실세가 누구인지를 저울질하느라 부심하고 있다. 정부쪽도 마찬가지로 혼란을 겪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 이들 두사람이 서로 다른 루트를 통해 남한경제인과 빈번한 접촉을 해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우그룹 김우중회장은 김달현을 통해,고합그룹 장치혁회장은 최정근을 통해 각각 북한을 다녀왔다.
게다가 남포조사단은 오는 6일부터 9일까지 김달현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하며,미원 등 몇개 기업은 10월중순 최정근의 초청으로 방북할 예정이다.
때문에 아직껏 북한측과 「선」을 대지 않은 많은 기업들은 과연 누구를 잡아야 할지 몰라 관련 정보를 캐내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같은 혼선이 생긴 이유는 지난 7월 김달현이 북한을 대표해 남한을 방문하던 그 시기에 최정근이 북경에서 20여개 남한기업인들에게 방북초청장을 보냈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측이 남북교류협력분과위 김정우북측위원장에게 최의 고려민족산업발전협회에 관해 물었을때는 김정우는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최정근은 우리기업인들과 만났을때 『남한을 방문했던 김달현부총리는 당국 차원의 공식적인 남북경협논의와 대우그룹을 상대로 하는 합작문제만을 맡기로 하고 그밖의 한국기업은 내가 담당하고 있다』고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대북투자를 추진하고 있는 기업인들중 일부는 김달현이 남북경협을 공식적으로 주도하고 있긴 하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최정근일 것으로 추정한다.
무엇보다 당이 경제를 주도하는 북한의 현실에 비추어 중앙당에 소속돼 있는 최정근이 정무원 소속의 김달현보다 한수 위가 아닐까 하고 짐작하는 것이다.
최정근이 맡고 있는 회사의 이름에 「광명성」이 들어가 있는데 이것은 바로 김정일을 지칭하는 것이어서 일부에서는 최가 김정일의 비자금총책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는 나이·직함,김일성과의 관계 등으로 미루어 김달현이 실세이고 최정근은 김의 보조역할을 하는데 그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최정근은 누구일까. 김달현이 서울까지 방문,남한 기업들을 둘러본 터여서 우리에게 낯익은 인물인데 반해 최정근의 이름은 다소 생소하다. 그러나 최정근의 경력을 들춰보면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님을 단번에 알 수 있다. 그는 50년 김일성대 경제학부를 졸업,오랫동안 무역부에 종사했을뿐 아니라 82년 4월부터 88년 10월까지 무역부장을 지냈다. 김달현의 바로 전임자였던 셈이다.
최정근은 우리 기업인과 만날때 자신을 「고려민족산업발전협회 회장」 「광명성총회사 이사장」 「금강산그룹 고문」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중 광명성총회사는 김정일의 직계종합회사로 지난 2월 창립됐는데 노동당의 직접 지시를 받으며 남북교역이나 경제합작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최가 고려민족산업발전협회 회장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는 점은 그가 경제문제에 있어 「실세」라는 추측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최정근은 이 고려민족산업발전협회에 대해 최근 『지난 6월 김정일의 특별지시로 발족해 대만을 비롯,재미·재일교포를 대상으로 합작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대남경협 창구업무를 맡고 있다. 말하자면 대한무역진흥공사 비슷한 경제단체인데 70여개 민간기업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고 남한 기업인들에게 밝혔다고 한다.
현재 최는 금강산그룹 박종근사장,쌀 직교역을 맡았던 재미교포사업가 박경윤씨 등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맺고 활발한 교역사업을 펴고 있다.
이에 반해 김달현이 맡고 있는 삼천리총회사는 정무원이 직접 운영하며 당국간의 공식적인 거래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이에 대해 당국은 북한의 대외교역 및 투자업무가 2원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대외경협을 총괄하고 있는 김달현은 정부당국을,최정근은 기업만을 직접 상대하는 분담체제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아무튼 재계에서는 김과 최를 저울질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여론이 강하다.
남포방문단의 방북 결과와 고합그룹 등의 방북결과를 종합적으로 따져봐야만 대략적인 윤곽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박의준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