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드는 「다단계」유럽통합/영국의 소극적 통합자세로 가시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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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경제여건 달라 환시혼란” 주장/이 “통화단일화 위한 긴축” 추진
유럽통합의 진로를 둘러싼 유럽국간의 갈등이 표면화하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와 독일,베네룩스 3국 등 5개국만의 소규모 조기통합론이 가시화되고 있다. 유럽 외환시장의 위기와 프랑스 국민투표를 전후해 표면화하기 시작한 「두가지 또는 세가지 속도」의 유럽통합 불가피론이 프랑스 국민투표 이후 노골화하고 있는 영국의 소극적 통합 자세로 더욱 확산되면서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5개국 조기통합론이 급속히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EC(유럽공동체) 회원국 지도자들이 공식적으로는 두가지 속도통합에 반대하고 있으나 마스트리히트조약에 규정된 EC의 경제·통화통합이 일시에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최근의 유럽 외환시장 위기로 입증됐다는게 많은 사람들의 지적이다. 통화통합의 전단계로 필요한 유럽통화제도(EMS)가 영국과 이탈리아의 ERM(유럽환율조정장치) 잠정탈퇴로 이미 고장났고 이는 각국의 서로 다른 경제여건을 무시한 채 통합을 이룬다는게 사실상 불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물론 마스트리히트조약은 이러한 점에 대비,각국의 경제조화 노력을 규정하고 있다. 또 인플레·재정적자·금리·환율 등 네가지 기준에서 합격선에 도달한 나라부터 97년이나 99년에 통화단일화를 시행하는 것으로 돼있다. 현재 이 기준에 도달한 나라는 프랑스와 룩셈부르크,덴마크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나라들은 모두 이 기준충족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형편이며 이와 관련,이탈리아·스페인 등은 이미 대대적인 긴축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외환시장위기를 지켜본 많은 전문가들은 마스트리히트조약이 시사하고 있는 두가지,또는 세가지 속도의 유럽통합 가능성이 거의 확실한 것으로 굳어졌다는데 일치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즉 독일을 중심으로 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 등 이른바 마르크권에 프랑스정도를 더한 5∼6개국이 1진그룹으로 마스트리히트조약에 규정된 경제·통화통합을 먼저 실현하고 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그리스·아일랜드 등이 후발그룹으로 경제조화 실현여부에 따라 1진그룹에 추후 가담하며 조약비준이 불확실한 영국이나,이미 국민투표로 비준을 부결시킨 덴마크 등은 별도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는 얘기다. 독일정부측은 계속되는 독일언론의 독­불 정상간 소규모 조기통합합의설에 대해 근거없는 억측이라고 부인하고 있으나 현재의 전체적인 상황을 종합해 볼때 두가지 또는 세가지 속도의 통합은 불가피하며 이로 인한 통합추진력 약화를 방지하기 위해 여건과 의지가 허락하는 독일과 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 5개국만이 마스트리히트조약에 정해진 일정을 앞당겨 통합을 실현하는 것이 충분히 검토될만하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이렇게 될 경우 유럽통합은 당초 지난 1954년 유럽석탄·철강공통체를 결성,유럽통합의 막을 열었던 5개국(이탈리아 제외) 중심체제로 회귀하게 될 전망이다.<베를린=유재식·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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