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와 게이츠 24년 만에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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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만의 만남이었다. 52세 동갑내기이자 정보기술(IT) 업계의 양대 산맥,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 1983년 애플 컴퓨터 행사에서 마주친 이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공식 석상에서 같이한 적이 없는 그들이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칼스배드 포시즌스 호텔. 이곳에서는 월스트리트 저널 주최로 '디지털로 된 모든 것(All things Digital)'이란 주제의 기술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오후 7시20분 무대에 오른 두 IT 거물은 월스트리트 저널 칼럼니스트의 사회로 90분 동안 IT산업의 현주소와 미래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

<관계기사 e11면>

5년 뒤 주머니PC 나올 수도
언론 "사이먼·가펑클의 만남"

▶잡스="빌은 업계 최초로 소프트웨어 회사를 차렸고 어느 누구보다 큰 공헌을 했다."

▶게이츠 ="스티브는 다가오는 산업의 움직임을 내다보는 사람이다."

"두 사람이 컴퓨터 산업에 어떻게 기여했느냐"는 사회자의 첫 질문에 IT업계 30년 라이벌은 이렇게 서로를 치켜세웠다. 그러자 이어진 질문은 "둘 사이의 가장 큰 오해는 무엇인가." 이에 게이츠는 "그동안 우리가 서로 불평을 해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이미 IT업계를 떠난 사람들이 그리워지는데 그나마 잡스가 함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잡스는 "10년 넘게 결혼을 비밀에 부친 것"이라고 농담하기도 했다.

자라나는 창업가들을 위한 조언을 해달라는 질문에 게이츠는 "최전선에 있다는 생각과 규모를 키우는 것은 가장 위대한 도전의 하나였다"며 "우리의 사업은 열정에 관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잡스도 "그 일을 사랑하지 않으면 실패하기 마련"이라며 "유능한 사람이 함께 있어야 위대한 조직을 만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날 대화에는 600여 명의 청중이 참석했다. 청중 가운데 한 명이 "서로에게 배운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자 게이츠 회장은 "잡스의 일처리 방식은 매혹적"이라고 극찬했다. 잡스는 MS의 제휴 능력을 꼽으며 "만약 애플의 유전자에 그런 장점이 조금 더 있었다면 정말로 잘했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언론들은 '사이먼과 가펑클의 만남'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다음은 대화록 요지. 대화록은 '디지털로 된 모든 것' 사이트(http://allthingsd.com)에 수록돼 있다.

-현재 IT 수준은.

▶잡스=PC의 뒤를 이을 제품이 폭발적으로 등장하는 중이다. 아이폰이 그 한 예다.

▶게이츠=기술 개발이 활발한 시기다. 시간이 지나면 현재를 '위대한 발명'의 시기로 기억할 것이다.

▶잡스=예를 들어 보자. 아이폰에 장착된 구글맵이 웹상의 구글맵보다 더 낫다. 아이폰의 구글맵은 지역 단위로 서비스하기 때문이다. 이는 휴대전화가 웹상에서보다 많은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사용자들은 저렴한 비용으로 고차원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됐다.

-앞으로 5년 뒤에는 사람들이 어떤 기기를 가지고 다닐 것으로 보는가.

▶게이츠=수많은 제품이 나올 것이다. 사람들은 태블릿PC, 그리고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작은 컴퓨터를 가지고 다닐 것이다.

▶잡스=PC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여러 번 나왔지만 인터넷이 활성화하면서 다시 살아났다. PC는 앞으로도 계속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다만 보다 다양한 형태가 나올 것이다.

-휴대가 가능한 IT 제품들은 어떤 것들이 나올 것으로 보는가.

▶게이츠=선택할 수 있는 제품의 폭이 매우 넓어질 것이다. 하지만 크기가 문제일 것이다.

▶잡스=5년 전에 어떤 제품이 우리 앞에 있을 것인지 생각하지도 못했다. 어떤 기기가 나올지 현재로선 알 수가 없다.

염태정 기자

나이창업시기 비슷한 IT맞수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와 애플의 스티브 잡스. 지난 30년 동안의 IT업계는 이 두 사람을 빼고는 말할 수 없다. IT와 관련된 기술 상당수를 이 두 사람이 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러나 올해 52세인 동갑내기 CEO 두 사람은 그동안 같은 꿈을 공유하는 친구이면서도 업계 정상을 위한 라이벌 관계였다.

특히 게이츠가 1975년 MS를 창업한 이후 뛰어난 사업 수완을 발휘하며 꾸준하게 주목을 받아온 반면, 잡스는 76년 애플 창업 이후 신기술을 주도하면서도 스스로 세운 회사에서 쫓겨나는 수모까지 겪었다.

잡스의 애플은 84년 매킨토시를 내놓으며 초기 개인용 컴퓨터(PC) 산업을 이끌었다. 하지만 85년 애플의 대주주들은 잡스의 독선적인 경영에 불만을 품고 그를 회사에서 내쫓았다. 반면 게이츠는 획기적인 운영체계인 MS윈도를 내놓아 그의 독주시대를 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유복한 가정 출신인 게이츠와 달리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잡스의 불운한 인생이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게이츠가 승승장구하는 동안 잡스도 86년 루카스필름의 3D애니메이션 파트인 픽사(pixar)를 인수하며 재기의 씨앗을 뿌렸다. 오랜 인고의 세월 끝에 95년 픽사의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잡스는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12년 만인 97년 애플의 CEO로 복귀, 새로운 PC 아이맥(iMac)을 성공시켜 1년 만에 쓰러져 가는 회사를 살려내며 주가를 9배나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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