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주(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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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어떤 행사때마다 술이 빠지는 일은 없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옛적부터 술을 빚는데 상당한 솜씨를 보여왔다. 고장마다 다르고 만드는 재료와 방법에 따라 다르며 계절마다 달라 그 종류는 헤아릴 수 조차 없을 정도다. 어떤 민속학자는 술의 종류에 있어 우리나라가 세계 으뜸일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일찍이 육당 최남선은 그 많은 민속주 가운데서 평양의 감로주,전주의 이랑고,광주·나주의 죽력고를 최고의 술로 꼽았다.
그 다음으로 꼽은 것이 김천의 두견주,서울지방의 과하주였다. 감로주는 소주에 단맛나는 재료를 넣고 붉은 기가 도는 곡식류로 발그레한 빛을 낸 것이며,이랑고는 소주에 배즙·생강즙·꿀을 넣어 끓인 것이고,죽력고는 청대를 숯불위에 얹어 뽑은 즙을 소주에 섞은 것이다. 이들 유명주들의 기본적인 재료가 소주였던 것을 보면 역시 우리 민족에 있어 가장 대중적인 술은 소주가 아닌가 싶다.
이밖에도 각 가정에서 독특한 방법으로 비전돼 내려오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처럼 많은 종류의 민속주들은 항상 식량정책과 주세문제에 상충되어 현대사회에 이르면서 차츰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정부가 한 도에 민속주 한가지씩을 만들도록 하는 방침을 정한데 뒤이어 얼마전부터는 변질우려가 없는 일부 증류식 소주에 대해 전국판매를 허용하기에 이르렀지만 대중적인 보급에는 역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 까닭은 워낙 소규모로 주조되는데다가 널리 알려지지 않아 자연 고가품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년 추석에는 문배주·안동소주 등 일부 민속주에 대한 인기가 갑자기 치솟아 품절사태까지 빚고 있다고 한다. 작년에 비해 양주 판매가 20%가량 줄어든 반면 민속주는 30∼40%나 늘었다고 하니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외화 절감에도 도움이 될는지 모른다.
하지만 「고급」 민속주의 값은 3만∼5만원에 달해 아직도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 밖에 없다. 좀더 싼값으로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연구돼야 하지 않을까.<정규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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