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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바로잡습니다] 2. 국제·통일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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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제부는 이라크 전쟁으로, 통일외교팀은 북핵 문제와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 등 대형 기사를 다루느라 숨가쁘게 보낸 한 해였습니다. 현장 취재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정론과 정확한 보도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습니다만 돌이켜보면 오보와 추측보도가 적잖았습니다. 1년을 반추하며 새해엔 보다 신뢰성 있는 보도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편집자]

국제 뉴스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 체포 소식이 전해진 지난 14일 국제면에는 부끄러운 기록이 담겼습니다. 전말은 이렇습니다. 오후 7시쯤 로이터.AP 같은 세계적 통신은 '한줄짜리' 체포소식만 전했습니다. CNN 등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국제부 기자들은 즉각 인터넷의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일본 언론은 한발 빠른 듯했습니다. 현지에 기자를 파견한 몇 매체는 독자 취재한 뉴스를 인터넷에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체포 당시 후세인이 다른 두명과 필사적으로 삽질하고 있었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몰락한 후세인이 달아나려 땅굴을 판다'는 그림이 너무나 그럴 듯해 3면에 크게 기사화 됐습니다. 그러나 이후 어떤 공신력 있는 외신에도 '후세인의 삽질'내용은 없었습니다. 그는 혼자 누워 있을 뿐이었습니다.

◇국제뉴스의 한계=외신은 국제기사의 시작이고 끝일 때가 상당히 많습니다. 독자적으로 검증, 확인할 수 있는 장치를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올 한해의 화두였던 이라크전쟁 보도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라크전 개전 이틀 만인 3월 23일 중앙일보는 AP통신 등을 인용해 연합군의 바스라 함락과 이라크 51사단 1만여명 항복을 1면 머리기사로 올렸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실 자체가 없었습니다. 국제부는 다음날 취재일기로 이를 사과했습니다. 또 23일에는 미 ABC 방송을 인용해 '후세인 망명설 솔솔'이란 기사를 실었고 4월 9일엔 '후세인 사망설'을 싣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지난 14일 후세인이 남루한 모습으로 체포되던 날 낯이 화끈 거렸습니다.

외신의 관점과 시각에 따라 전쟁 보도가 들쑥날쑥 하기도 했습니다. 3월 24일 "이라크의 최대 변수는 8만 공화국 수비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수비대는 전쟁 내내 변변히 힘을 못 썼습니다. 3월 30일 전력의 65%만 남았고 결국 4월 6일엔 수비대 6개 사단이 전멸했습니다. 외신을 너무 과신해 무비판적으로 전한 것은 아닐까, 반성합니다.

◇'북핵'보도=북한 핵 문제에서는 '북한은 악'이란 입장의 강경파를 소식통으로 하는 미국의 언론에 너무 의지했고 결과적으로 강경파들의 언론 플레이에 휘둘렸다는 외부의 지적도 있습니다. 4월 26일 북한이 3자회담 자리에서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협박을 했다고 한 미국 언론 인용 보도가 그 예입니다. 이 보도는 북한의 발언을 거두절미한 채 핵 위협에만 포인트를 둔 것이었습니다. 북한의 취지는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었는데도 말입니다. 5월 8일 뉴욕 타임스를 인용, 1면 톱기사로 "영변 재처리 시설서 연기 포착"을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기사를 1면 2단으로 써야 했습니다. 결국 위협만 강조한 꼴이 됐습니다.

'외신 의존'은 국제면 기사의 숙명적 한계입니다. 그러나 외신을 넘어서려는 노력을 얼마나 진지하게 했는가도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중앙일보는 국내 신문사 중 가장 많은 13명의 해외특파원을 파견하고 있습니다만 그들이 발로 뛰어 쓴 기사가 기대만큼 많지 않습니다.

이재학 국제부장의 辯

지난달 21일 낮 바그다드의 팔레스타인 호텔로 로켓포가 날아들었습니다. 서정민 특파원이 한국 국회조사단과 함께 묵고 있던 호텔이었습니다. 徐특파원이 위성 전화로 어느 외신보다 먼저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기사를 보내고 나오는데 10m 앞에서 로켓포가 터지더라고요. " 깜짝 놀랐습니다. "뭐야? 안 다쳤어?"라고 묻자 그제서야 "죽을 뻔했죠 뭘"하고 대수롭지 않은 척했습니다. 그런 그도 그날 밤 매트리스를 호텔 방 벽에 세워둔 채 방바닥에 누워 뜬눈으로 지새웠답니다.

국제부 데스크는 기사보다 특파원들의 안위가 더 걱정일 때가 많습니다. 이라크전에 파견된 안성규 종군기자는 미군과 함께 전선을 누볐습니다. 강찬호 순회특파원도 전쟁 직전 살벌했던 바그다드의 분위기를 전해왔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모르고 있어야 할 때 데스크는 마음 졸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새해라고 편한 취재만은 없겠죠. 외신의 한계도 여전할 거고요. 그러나 최대한 현장취재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통일.외교

올 한해 외교.안보.남북관계에는 북핵위기, 37차례나 이어진 남북회담, 이라크 파병, 한.미동맹 재조정과 주한미군 재배치 논란 등 굵직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만큼 논란을 낳은 보도가 많았습니다. 취재 분야의 특성상 사실확인에 어려움이 많다 보니 추측성 보도도 적잖았습니다.

◇북핵 회담 전망 보도=중앙일보는 6자회담이 연내에 재개될 것으로 예상하는 보도를 여러 차례 냈습니다. 그러나 연말이 가까워 오도록 회담 재개는 감감한 상태입니다. 뒤늦게 이를 바로잡는 보도를 했습니다만 성급한 추측 보도로 독자에게 혼란을 초래했습니다.

지난 11월 24일자 2면의 '6자회담 내달 17~19일 유력'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11월 말은 6자회담 참가국 간에 2차회담 발표문 및 개최 시기를 놓고 연쇄 조율이 이뤄진 때로 본지는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그 같은 보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정부 당국자는 "참가국들이 차기 회담 일정을 조율 중"이라는 단서를 달기도 했으며, 또 회담 재개의 열쇠를 쥐고 있는 북한이 확약한 상태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시기까지 보도하게 된 것은 북한이 그 전에 내놓은 발표를 너무 낙관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10월 25일, 닷새 전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다자틀 내에서 북한에 안전보장을 제공할 의사를 표명한 것과 관련해 조건부 화답을 했습니다. "우리는 부시 대통령의 발언이 우리와 공존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고 동시행동 원칙에 기초한 일괄타결안을 실현하는 데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고려할 용의가 있다"는 외무성 대변인 회견이 그것입니다.

이어 같은 달 30일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우방궈(吳邦國)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 회담은 연내 2차회담 재개 쪽에 더 무게를 싣게 했습니다. 조선중앙방송은 "쌍방은 6자회담 과정을 계속 이어나가는 데 대해 원칙적으로 동의했으며, 북측은 6자회담이 동시 행동원칙에 기초한 일괄타결안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된다면 앞으로 6자회담에 나갈 용의를 표시하였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런 과정이 북한의 2차회담 참가를 낙관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입장은 전제조건이 달려 있었습니다. "동시행동 원칙에 기초한 일괄타결안 실현"이 그것입니다.

◇파병 숫자 앞질러 맞히기=중앙일보는 추석 연휴 직후인 9월 16일 1면 머리기사로 정부가 "3천~1만명 파병 검토"라고 보도했습니다. 정부 고위당국자의 발언을 토대로 작성한 이 기사는 정부가 최종적으로 추가파병 규모를 3천명 이내로 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부분적인 과장보도가 됐습니다. 정부 방침이 최종 확정되기 전에 앞질러 보도하는 데 따른 문제였습니다.

또 10월 18일자 3면에 '특공연대 주축 5천명선 예상'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당시 상당수의 정부 당국자들이 "한국군이 사단사령부와 지원부대를 구성해 다국적군 부대를 지휘하면서 일정 지역을 맡기 위해서는 이 정도 규모가 필요하다"고 밝혀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강영진 통일외교팀장의 辯

유난히 보안을 강조하는 이 분야의 특성상 통일외교팀이 보도한 기사와 관련해 많은 당국자들이 이른바 '보안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저희 취재진이 의도한 바가 아니었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외교.안보 및 남북문제는 국익과 직결된 문제라 보도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점 인정합니다. 사안에 따라선 보수.진보 간 소모적 갈등을 부추기는 등 그 파장에도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국민의 알권리가 무한정 제약을 당해서도 안 됩니다. 정확한 정보의 공개야말로 투명성을 생명으로 하는 민주 행정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새해엔 이 두 사안의 충돌이 최소화됐으면 하는 게 소망입니다. 정부의 공개 거부, 취재 회피 등을 당하며 '국익'의 가면 뒤에 숨은 관료들의 보신주의는 아닌지 의문이 생길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저희도 국익과 공공의 이익에 최대한 신경쓰겠습니다만, 정부도 국민의 알권리를 최대한 존중해 줄 것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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