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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중국이 "고구려는 한국사"라고 했다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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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중국 국무원 산하 사회과학원이 2005년 발간한 '열국지(列國志)' 한국편이 고조선을 '한반도에서 최초로 건립된 국가'라고 명시해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책은 또 고구려.백제.신라가 고대 한반도의 삼국시대를 열었다고 서술했다. 중국이 올해 초까지 5년간 진행한 '동북공정' 연구가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격하하는 등 왜곡으로 일관한 것에 비교하면 일단 긍정적이고 반가운 내용이다.

철저한 검토와 승인을 거쳐 공식 출판물을 펴내는 중국의 관례에 비추어 볼 때 열국지 한국편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우리는 이런 고대사 인식이 교과서 등 중국의 다른 출판물이나 연구작업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각국 사정을 요약해 소개하는 일종의 개설서이자 공식 가이드북에 해당하는 책 한 권만으로 중국이 동북공정의 왜곡된 역사관을 포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열국지는 2003년 발간이 시작돼 한국 등 102개국 편이 이미 나왔으며, 내년까지 총 180개국 편으로 시리즈를 마무리할 예정이라 한다. 개별 국가를 별도로 연구해 책을 내기보다 기존 자료를 정리한 수준으로 보아야 한다. 더구나 2002년 시작된 동북공정 작업이 열국지 간행 시기와 겹치는 것을 보면, 열국지를 중국이 기존 역사인식을 반성하고 수정한 결과물로 보는 것은 안이한 희망사항일 뿐이다.

한국과 중국은 2004년 고구려사를 둘러싸고 외교 갈등을 빚다가 고대사를 정치 쟁점화하지 않고 중국 교과서에 왜곡된 내용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등 5개 항에 합의했다. 중국이 동북공정 연구결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올 초 겨울 아시안게임을 전후해 백두산을 집중 부각하고, 일부 교과서가 부여.고구려를 중국사에 넣어 서술하는 등 중국 측의 역사왜곡은 여전하다. 결국 동북공정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외교당국은 당국대로, 학계는 학계대로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국제사회에 한반도 고대사에 대한 우리의 입장과 연구성과를 널리 알리는 작업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