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분조건부 대출'편법 상환 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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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이 '처분조건부 대출'의 편법 상환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대출만기 때 무조건 기존 주택을 처분해야 하지만 대출금만 상환하는 편법이 발생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처분조건부 대출은 투기지역 내 신규 대출을 받으면서 과거에 대출 받은 아파트는 1년 내 처분하겠다고 약속한 대출이다.

2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주부터 은행검사 1.2국이 합동으로 1분기에 상환된 처분조건부 주택담보 대출의 세부 현황 자료를 은행들로부터 제출 받아 구체적인 상환 내용을 파악하고 있다. 기존 주택 처분 없이 자기 자금으로 상환한 경우와 비은행권.대부업체 등 다른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 받아 상환한 경우 등을 모두 면밀히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금감원은 기존 주택 처분 없이 '대출 갈아타기' 등으로 대출금만 상환한 것으로 드러나면 해당 금융기관을 문책할 방침이다.

◆은행 눈감아 주기 의혹=처분조건부 대출은 올 상반기에만 2만~3만 건이 약속한 1년이 된다. 은행들은 고객이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3개월간 높은 연체 이자를 물린 뒤 경매 등 강제상환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처분조건부 대출 물량이 경매시장에 쏟아져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국민.우리은행 등 일부 은행에서는 기존 주택을 팔지 못해 대출금을 갚지 못하고 연체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경매시장이 의외로 잠잠해 은행들이 편법 갈아타기를 눈감아 주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한 시중은행 영업점은 기존 주택이 매매계약을 진행 중이거나 팔릴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면 연체료를 일정기간 면제해 주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집을 내놔도 안 팔린다는데 고객과의 관계를 무시하고 무조건 법대로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비은행권 대출 '풍선 효과'=올 들어 은행권 주택담보 대출 잔액은 4개월 동안 1조20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지난해 27조원이 늘어난 것에 비하면 증가세가 확연히 꺾였다. 특히 4월엔 6년여 만에 처음으로 200억원이 줄었다. 그러나 비중이 4분의 1에 불과한 비은행권(보험 포함)은 같은 기간 2조8000억원이나 늘었다. 여기에 대부업까지 포함하면 비은행권 대출은 더욱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일부 대부업자 등은 인터넷 사이트 등에서 '대출 갈아타기'를 적극 권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권 대출이 줄고 비은행권 대출이 늘어나는 것으로 보면 '편법 갈아타기'의 심증이 간다"며 "아직 경매로 넘어간 사례가 보고되지 않은 것도 이 같은 편법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안혜리 기자

◆처분 조건부 대출=2005년 6.30 부동산 대책에 따라 금융당국은 2005년 7월 4일부터 투기지역 내 신규 대출 건수를 한 건으로 제한했다. 그러나 기존에 담보대출을 받은 주택을 1년 내에 처분한다는 조건으로 예외적으로 두 건의 복수 대출을 허용했다. 1년 후에도 대출금을 상환하지 않으면 3개월 동안 연 15~20%의 연체 이자를 물리고 이후에는 기존에 갖고 있던 아파트에 대해 경매나 압류 등 강제처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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