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온라인 월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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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요즘은 현금으로 월급을 주는 회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컴퓨터와 담을 쌓고 있는 구식회사들 마저 회계 부서만은 컴퓨터이용에 이력이 붙은 곳이 많다. 복잡한 거래관계가 자꾸 늘어나 컴퓨터의 도움 없이는 골치 아픈 회계업무를 시원하게 정리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월급날이 되면 여간 편리한 게 아니다. 작은 회사는 직원들의 계좌번호가 담긴 급여리스트 한두 장을, 큰 회사는 자기테이프 한 통을 은행에 가져다주는 것으로 부산한 하루 일거리가 간단히 끝나버린다. 물론 컴퓨터로 계산한 자료들이다. 그 다음 현금이 들어오고 나가는 일은 은행이 몽땅 대신해준다. 사원들은 회사거래은행의 통장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 사원들은 컴퓨터가 계산하고 프린터가 찍어낸 조그만 급여명세서 한 장을 달랑 받을 뿐이다. 그러나 그때쯤에는 이미 집에 있는 부인들이 근처은행에서 온라인으로 찾아낸 월급을 벌여놓고 한창 가계예산을 짜고 있는 중이다.
전 같으면 월급날만 되면 회사 안은 약간 들뜬 기분에 술렁댔다. 현금이 들어있는 큼직한 봉투 앞면에는 또박또박 펜으로 쓴 명세가 적혀있었고, 경리 과 근처에는 새 봉투 한 장을 더 얻으려는 사원들이 서성이는 모습도 더러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컴퓨터가 임금계산을 도맡아 처리해 주면서부터 이런 풍속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너무나 빈틈없이 정교한 컴퓨터로 인해 직장생활의 융통성이나 낭만이 없어졌다는 불평이 나오고 있다. 집에서까지 가장의 위상이 초라해졌다고 한다. 월급봉투를 건네 받을 때 주부들의 얼굴에 가득 차던 감사의 표정도 이제는 찾아 볼 길이 없어졌다고 한다. 오죽하면 미국에서는 온라인 임금지불이 현금을 직접 만지는 즐거움을 빼앗는 심각한 권리침해라고 해서소송을 낸 사람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분위기가 반영된 탓인지 우리사회에는 월급날만 되면 회사 근처거래은행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이상현상이 생기고 있다. 이런 수고쯤이야 집에서 얼마든지 대신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이는 가장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서 일수도 있다. 또는 옛 생활의 향수를 못 잊거나 지난 관습의 뿌리를 차마 버릴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무리 세상이 삭막해진다 해도 우리 민족은 타고난 순발력으로 어디서든 인간적인 삶을 즐길 줄 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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