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야할 헌재 단체장 심리(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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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헌법재판소에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연기에 대한 헌법소원이 문자 그대로 「뜨거운 감자」일 것이다. 본질적으로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정치적인 문제를,그래서 정치권이 끝내 풀지 못한 문제를 비정치적 기관인 헌법재판소가 일도양단의 법률적 결론을 내려야할 입장에 처하게 된 것은 참으로 곤혹스러운 일일 것이다.
따라서 헌재가 가급적 정치권의 문제해결을 기다려 그 짐에서 벗어나려고 「신중한 처리」를 내세워 머뭇거리는 건 어느 정도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마냥 판단을 미루기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현재 여야가 여론의 압력때문에 특위를 구성해 협상을 하고 있긴 하지만 새여당총재마저 연내실시 불가를 밝힌 단체장선거문제가 쉽사리 해결되리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여야의 대선전략과 맞물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협상에 의한 해결은 어렵다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그렇다면 헌재로서는 적어도 정치적 타결을 기대하고 머뭇거릴 이유는 없다고 봐야한다.
헌재가 심리를 지연시키고 있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이 가져올 정치적 파문이 너무도 큰 것임을 깊이 고려하기 때문이라고도 전해지고 있다. 물론 비정치적 법률기관이라고 해서 정치적 고려를 전혀 도외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나 시기는 이미 그러한 누이좋고 매부좋은 선택을 허락하고 있지 않다. 현재처럼 심리를 계속 미룰 경우 결과적으로는 이미 판단을 내린 셈이 된다. 즉 의도했든,아니든 여당의 입장을 선택한 셈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는 법률적 판단이 아닌 정치적 판단이라 할 것이며 헌재가 스스로를 법적 기관 아닌 정치적 기관으로 변질시키는 일이다.
우리가 단체장 선거의 연기가 위헌이다,아니다를 말하고자 하는건 결코 아니다. 다만 우리는 어느 쪽으로 판단을 내리든 이제는 심리를 서둘러 매듭지어야할 문제이지 미룰 일이 아님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무릇 소송에는 소송의 실익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판단을 미루면 미룰수록 그 실익은 그만큼 작아지게 된다.
이번 헌법소원은 증거조사도 필요없는 등 심리 자체는 전혀 복잡할 것이 없다. 또 첫 소원은 이미 지난 6월18일에 제기된 것이어서 판단할 시간은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다.
우리는 헌재가 심리를 연기해옴으로써 그동안 쌓아왔던 그나마의 신뢰와 권위에 상처를 내게 된 것을 무엇보다도 안타깝게 생각한다. 헌법재판소법 제4조는 『재판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오는 9월1일로 개소 4주년을 맞게 된 헌재로서는 새삼 이 규정의 뜻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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