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두석의『홍장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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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최두석씨는 무엇보다 우리현실의 어두움을 날카롭게 조형하고 있는『대 꽃』과『성에 꽃』의 시인이다. 그와 동시에 그는 우리 문학의 움직임을 적절치 포착하여 평가할 줄 아는 비평가다.
특히 최근 몇년동안 그는 시와 리얼리즘의 관계를 해명한 뛰어난 평론을 계속 발표함으로써 리얼리즘론의 영역을 넓혔을 뿐만 아니라 그 활성화와 심화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이는 최두석씨가 시와 비평의 두 장르에서 고루 주목할 만한 성과를 제출한 사람이란 것을 뜻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런 사람이 얼마 전에는 사랑과 이별을 노래한 서정시를 발표해 다시금 세인의 화제가 되고 있다.「홍장에게」(『문학과 사회』가을호)라는 시가 바로 그것이다. 이 시는 6개의 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연은 모두 5행으로 짜여져 있다. 이 시가 이렇게 질서정연한 외형을 구비하고 있다는 것은 이 시가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일정한 박자의 노래가 되기를 열망하고있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이 노래는「가난한 마음」의 소유자요, 인생이란 무대에서 언제나「어설픈 배우」였던 화자가「경포 호수 속에서 홀연 나타나/상처받은 젖가슴을 보여준 여인」을 만나한 때 그녀에게「감전」되기도 하였으나 무슨 사연 탓이었던지 그녀와 헤어졌으며 그 뒤 이별의 고통을 이겨내려고 애쓰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 시는 남녀의 사랑에 얽힌 지극히 낯익은 이야기를, 즉 남녀의 우연한 만남과 뜨거운 사랑과 고통스러운 이별의 과정을 우리에게 비교적 자상하게 들려주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이 시가 감동적인 것은 그처럼 범속하기 조차한 이야기를 시인이 과장도 숨김도 없이, 그러면서도 절도와 품격을 잃지 않고 토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의 진정한 매력은 이 시의 화자가 많은 서정시가 그렇듯이 시인과 분리되지 않는 듯하다는 상상에서 발원한다.
즉「홍장에게」는 시인이 근래 경험한 어떤 정서적 파탄을 절실하게 노래하고 있다는 생각이 우리를 한층 더 긴장시킨다는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하니 갑자기 시인이 부럽다. 설혹 시인이 새로운 사랑을 성취하지 못하여 그 사랑의「불에 데인 상처」에「갈잎」을 붙이는 고통을 감내할지라도 이처럼 아름다운 시를 얻을 수만 있다면 사랑의 실패조차 시인에겐 축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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