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사태 기소 1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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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13면

지난해 6월 20일 서울 중앙지법에서 열린 1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황우석 박사가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황우석 전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업무상 횡령, 생명윤리법 위반….”

황 "재판 언제 끝나나" 檢 "우리가 묻고 싶다" #재판장은 생물학 공부중 … 재판 진도 10분의 1도 못 나가

지난해 5월 12일 서울중앙지검. 이인규 3차장이 온 나라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황우석 사태’에 대한 수사 결과 발표문을 읽어 내려갔다. 63명의 특별수사팀을 동원해 950여 명을 조사한 검찰은 이날 황 박사 등 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과학 분야의 성수대교 붕괴 사고”라고 불리던 ‘황우석 사태’. 기소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재판의 진도는 얼마나 나갔을까. 이제 거의 막바지에 다다르지 않았을까.

서울중앙지법으로 갔다. 2층의 사건 검색 컴퓨터 앞에 의자를 끌어당겼다. ‘형사공판’ 항목을 클릭한 다음 ‘황우석’을 쳐 넣었다. 사건 진행 내역이 주르륵 떴다.
‘2007. 05. 15. 공판 기일(서관 제417호 법정 14:00)’

지난해 6월 20일 첫 공판부터 세어 보니 11번째 공판이 진행된 상태였다. 재판부인 형사26부 판사실 문을 두드렸다. 재판장 한범수 부장판사를 만났다. 그는 2월 법관 인사 때 황 박사 재판을 맡고 서점부터 찾았다고 한다. 체세포, 배반포, 줄기세포, 핵 이식, 처녀생식… 생명공학 분야의 복잡한 전문용어를 접하면서 당혹스러움을 느꼈던 것.

“생물 용어를 접하는 게 고교 졸업 후 처음이에요. 비록 기초적인 생물학 책이었지만, ‘난자는 감수(減數) 분열한다’처럼 책에서 읽은 내용이 증인 입에서 나올 땐 ‘아, 그 얘기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곤 합니다.”

-언제쯤 재판이 마무리될 것 같습니까?
“저도 알 수 없네요. 검찰 측 증인만 70, 80명이나 된다고 하던데…지금까지 피고인 신문을 거쳐 증인 6명의 증언을 들었습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진행할 계획인지요?
“이 사건을 맡게 된 뒤 공판을 세 차례 했는데요. 다소 늘어지는 느낌이 있어 ‘공소사실과 직접 관련된 증인부터 하자’고 검찰 측에 주문했습니다. 다른 사건들 때문에 집중해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앞으로는 재판을 ‘3주일에 한 번꼴’로 당겨서 할 생각입니다.”

이처럼 재판 기간이 길어지고 있는 데는 공판중심주의 영향이 적지 않다. 법원은 검찰 조서 위주로 판단하던 관행을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바꿔왔다. 대형 이슈인 황우석 사건도 당연히 적용 대상이 됐다. 공판중심주의는 법정에 나온 피고인 진술과 증인 증언, 검찰 증거 자료를 중심으로 유ㆍ무죄를 판단한다. 그때그때 증인이 정해지다 보니 전체 구도가 그려지지 않은 채 재판이 끝없이 이어질 수 있다.

지금까지 가장 큰 쟁점은 2004년 사이언스 발표 논문에 나온 1번 줄기세포(NT-1)가 서울대 조사위 발표대로 처녀생식인지다. 서울대 조사위는 지난해 1월 “인위적인 핵 이식이 아닌, 자연적으로 생긴 ‘처녀생식’ 줄기세포”라고 발표했다. 황 박사에게 원천기술이 없다는 뜻으로 ‘과학 사기극’이란 검찰 입장을 뒷받침한다. 반면 황 박사는 “난자에 체세포 핵을 이식해 얻어낸 줄기세포”라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 문신용 서울대 의대 교수, 이용성 한양대 의대 교수 등을 상대로 “처녀생식 가능성이 크다”는 증언을 받아내는 데 주력했다. 변호인단은 “그럴 것이란 식의 추측을 말하지 말고, 팩트(사실)를 말하라”며 반대신문을 펴 나갔다.

황 박사도 공판중심주의를 활용해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했다. 재판장에게 발언을 신청해 직접 반박에 나서고 있다. 노 이사장이 “배반포(줄기세포 전 단계)의 질에 문제가 있어 줄기세포 수립에 실패한 것”이라고 하자 “역사적 재판을 하는 신성한 법정에서 진실을 말하라”고 일갈했다. 문 교수를 향해선 “저처럼 피고인의 자리에 있을까 두렵다”는 극한 표현까지 썼다. 법정에서 영상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난자에서 핵을 빼내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우리 팀이 만든 배반포의 질은 누가 봐도 우수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처럼 어떤 증언이 나오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반전될 가능성이 커지자 검찰과 변호인은 증인 규모 및 신청 대상자를 놓고 사사건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변호인은 “핵심 증인 8~10명 정도만 부르면 나올 내용은 다 나온다”는 입장이다. 반면 검찰은 “검찰 측 증인 수만 70명 가까이 된다”고 한다.

“주된 범죄 사실은 SK와 농협에 연구 지원금을 요구해 챙겼다, 연구비를 횡령했다, 이런 거잖아요? 그래서 증인을 압축하자고 했는데요. 검찰은 유죄 입증에 필요하다고 하니…우리는 따라가면서 방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이봉구 변호사)

“공소사실과 직간접으로 관련 있는 증인들입니다. 변호인 측에서 그분들이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을 증거로 받아들이겠다고 하면 굳이 법정에 다시 부를 필요가 없지요.”(수사팀 박근범 부장검사)

공판 한 번에 증인이 두 명씩 나온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판을 30차례 이상 더 열어야 한다. 재판이 내년을 넘길지 모른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황 박사 지지자들은 “황 박사 연구팀이 재연 실험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며 서명운동을 본격화할 태세다. 논란만 벌일 게 아니라 황 박사 팀에 6개월의 시간을 주고 체세포 줄기세포를 진짜로 만들 수 있는지 확인해 보자는 얘기다.

다음달 5일 열리는 다음 공판에는 MBC ‘PD수첩’에 2005년 사이언스 논문 조작 의혹을 알린 ‘제보자 K’ 등이 검찰 측 증인으로 나올 예정이다. 2004년 논문의 데이터 조작, 2005년 사이언스 논문 조작, 연구 지원금 수수 과정 등 ‘본 게임’의 쟁점에 대해 변호인 측은 검찰 기소 내용을 뒤집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수사팀의 한 검사는 “공판이 끝나고 황 박사가 ‘언제쯤 재판이 끝날 것 같으냐’고 묻기에 ‘오히려 우리가 묻고 싶은 질문’이라고 답했다”며 “황 박사가 자신이 벌인 일을 왜 시인하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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