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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정을 자수정으로 방사선의 색채 마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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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무색 수정에 방사선을 쪼이면 자수정으로 변한다. 방사선에 의해 그 내부에 있는 양이온이 산화하거나 분자들이 뭉치면서 색이 바뀌는 것이다. 사진은 무색 수정(左)과 무색 수정에 방사선을 쪼여 색을 바꾼 자수정. [사진=김태성 기자]

다이아몬드의 색을 바꿀 수 없을까. 과학자들과 보석상의 바람이었다. 무색 다이아몬드보다 훨씬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유색 다이아몬드를 마음대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비법의 하나는 방사선이었다. 방사선을 무색 다이아몬드에 쪼여주면 색이 변한다. 다이아몬드는 노랑.초록.파랑 등 갖가지 색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방사선을 쪼이면 색이 바뀌는 보석은 다이아몬드뿐 아니다. 백수정은 자수정으로, 무색 토파즈는 청색으로, 진주는 은청색과 은갈색.은흑색 등으로 바뀐다.

방사선이 만드는 '마술'이다. 방사선 산업이 국내에서도 최근 태동하기 시작하면서 방사선 응용기술이 관심을 끌고 있다. 방사선은 원자를 구성하는 양자.중성자.전자가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 X선.알파선.베타선.감마선 등의 방사선을 낸다. 이런 방사선을 내는 물질은 코발트.요오드.우라늄.탄소 등 많다. 그 방사선을 사람이 많이 쬐면 암이 발생하는 등 병이 생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이아몬드의 색을 바꾸 듯 광물의 성질을 바꾸거나 식품.의료용품의 살균, 신약 개발, 식물의 품종 개량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하고 있다.

◆ 식품 알레르기 백신도 제조=계란이나 우유.콩.밀가루.땅콩 등을 먹으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사람이 꽤 있다. 성인의 경우 2%, 어린이는 8% 정도가 식품 알레르기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계란의 경우 오브알부민이라는 물질이 알레르기를 일으킨다. 거기에 방사선을 쪼이면 그 구조가 바뀐다. 겉으로 봐서는 오브알부민이긴 한데 이를 먹으면 알레르기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를 이용하면 독감 백신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즉 방사선을 쪼인 오브알부민을 먹으면 알레르기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면역반응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엔 계란을 먹어도 알레르기가 나타나지 않는다. 방사선을 쪼여 아예 우유나 계란 등 주요 식품에서 알레르기 물질의 구조를 바꾸기도 한다.

변명우 한국원자력연구원 부설 정읍방사선연구소장은 "식품에 방사선을 쪼인다고 해서 방사선이 식품이 남아 있거나 식품이 몸에 해롭게 변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 우주 식량도 방사선 기술이 필수=국제우주정거장에는 우주인들이 상주한다. 우리나라 우주인도 내년 초 국제우주정거장에 보낼 예정이다. 이들이 먹을 우주 식량은 완전 멸균을 해야 한다. 거기에도 방사선이 특효다. 현재 미국이나 유럽은 우주 식량의 멸균을 방사선으로 한다.

정읍방사선연구소도 한국 식단의 우주 식량을 개발했다. 김치의 경우 통조림처럼 끓여서 살균할 수 없다. 김치가 아주 맛있게 익었을 때 그 속에 있는 유산균 등 모든 균을 멸균하면 김치맛은 그대로 유지되며, 우주에서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 살아 있는 균이 없으므로 더 이상 발효가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읍방사선연구소는 끓인 물을 부어 먹을 수 있는 우주라면과 우주생식도 개발했다.

미국의 경우 방사선을 이용한 완전 멸균 기술을 학교 급식에도 적용하고 있다. 그러면 급식으로 인한 식중독을 막을 수 있다.

◆ 추적자 역할도=방사선을 내는 물질인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해 신약의 체내 작용 부위 추적, 댐의 미세한 균열, 송유관의 파열 지점 등을 알아내기도 한다.

정읍방사선연구소는 스위스 MMV사가 개발한 말라리아 치료제 후보물질이 동물의 몸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나를 알아보는 데 탄소와 요오드 방사성 동위원소를 사용했다. 여기에 신약 후보물질을 부착한 뒤 동물의 몸에 주사하고, 그 방사성 동위원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영상으로 볼 수 있다. 방사성 동위원소에서 방사선이 나오기 때문에 그 분포를 보면 되기 때문이다. 송유관 파열 지점 역시 방사선이 관로 밖에서 나오는 곳을 찾으면 된다. 이런 방법은 눈으로 보기 어려운 것을 방사선을 통해 보게 한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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