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지키는 야구'에 싫증난 삼성 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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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브라질 축구대표팀을 이끌고 1994 미국월드컵에 출전한 카를루스 파헤이라 감독은 결승에서 0-0 무승부 후 승부차기 끝에 이탈리아를 누르고 24년 만에 고국에 월드컵을 가져왔다. 하지만 그는 브라질 국민의 비난 속에 귀국 직후 감독직을 내놓아야 했다. 파헤이라가 추구한 수비 축구는 골의 과정을 즐기는 브라질인의 즐거움을 빼앗았기 때문이었다.

이만수 SK 코치의 대구 입성으로 떠들썩한 삼성-SK의 3연전에서 대구 경기장을 찾은 삼성 팬들은 하나같이 이만수에 대한 향수와 더불어 선동열 삼성 감독의 '지키는 야구'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친구와 함께 온 회사원 박정호(32)씨는 "예전엔 틈만 나면 야구장을 찾았는데 요즘은 잘 오지 않는다. 전엔 우승 못해도 재미있게 야구를 했는데 지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삼성 골수 팬이었는데 요즘은 호쾌한 타격을 펼치는 롯데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팬들은 공격 야구를 보고 싶어 했다. 김홍희(35)씨는 "투수들 다 동원해서 2-1로 이기는 것을 원치 않는다. 시원하게 공격하고 9-10으로 지는 게 더 좋다"고 말했다.

이종순(36) 삼성 서포터즈 대구지역 연합회장은 "지난해 우승이 확정적인 상황에서도 권오준을 2이닝씩 던지게 하는 데 기가 찼다"며 "올해도 우승하면 또 이대로 갈 것 아닌가. 차라리 우승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성래.양준혁.이동수.이승엽이 호쾌한 타격 쇼를 펼친 1995년, 삼성은 5위에 그쳤지만 대구 구장 평균 관중은 만원(1만2000명)에 가까운 9904명이었다. 2년 연속 우승을 달성한 지난해 평균 관중은 3933명이었다.

대구=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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