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관계 커지는 목소리(패전 47년… 떠오르는 일본: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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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경제의존 높아지자 “나빠지면 한국손해”/동북아 주도권 싸고 양국 곳곳서 신경전
『정말 정상적인 일한관계는 과거(식민지시대)의 햇수와 같은 36년 정도는 걸릴겁니다.』 66년 초대 주한대사로 임명된 기무라 시로시치(목촌사랑칠) 대사는 부임에 앞서 일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전망했다.
그러나 36년에서 10년도 더 지난 오늘까지 한일관계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심지어 양국관계가 10년내 최악이라느니,한일관계 위기라느니 하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88억달러에 이르는 무역적자를 기록,국교정상화 이후 적자누계가 총 6백61억달러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경제적 불균형은 일본에 대한 경계를 넘어 반일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더군다나 양국관계의 개선에 기본적인 장애가 되고 있는 과거사와 관련해서도 군대위안부라는 자극적인 현안도 걸려있다.
외무부의 정책담당자들은 그럼에도 현재 상태는 매우 양호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거 김대중사건이나 문세광사건,교과서왜곡사건과 독도·과거사문제에 대한 망언사건 등 양국의 국민감정을 폭발시켰던 사건들이 계속 이어져 갔던 시절을 비교하면 현재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또 양국간에는 나카소네·가이후·미야자와총리와 전두환·노태우대통령이 상호방문하는 등 정상의 교환방문이 이뤄져 왔다.
그렇다고 해도 최근의 현상은 세대를 넘어가며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일본에서는 최근 대한관계에서도 점차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심지어 『한일관계가 나빠져도 일본에는 영향이 적지만 괴로운 것은 한국일 것』이라며 무관심하려는 경향도 확산되고 있다고 일본인들은 위협하고 있다.
그것은 이미 경제에 있어서 일본 의존적인 성향이 너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인들은 신기술개발보다는 일본제품 모방이라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고 기업경영에서 기술협력까지 일본의 기술과 기업운영방식에 매달려 「경제예속화」의 우려가 실감되고 있다.
일부 정치인중에는 일본과의 친교를 정치적 뒷받침으로 삼는 이들도 적지않으며 「한일안보협력」 주장까지 나돌고 있는 형편이다.
일본인들은 이런 허점을 파고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치·경제적인 실상과는 다르게 한국민들의 표면적 대일감정은 거의 무조건적으로 반일적이다. 아니 반일적인 표현을 쓰지 않으면 주위의 눈총을 받을 수도 있는 분위기다.
양국관계는 「조정기」에 들어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칫하면 「조정」의 결과도 반일과 염한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버릴 수 없다.
양국 사이의 감정을 악화시키는 주된 요인은 양국간의 감정차원에서 과거사의 처리문제이지만 저변에는 동북아 및 아시아의 주도권과 관련된 국제적인 역관계가 감춰져 있다. 일본인들은 65년의 청구권협정으로 과거사는 끝난 문제라고 주장한다. 한국이 대일청구권이 「완전히,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포기하고 경협자금을 받은이상 더이상 거론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이 「마음으로부터의 사과」과 아닌 「흥정으로서의 사과」를 했다는 점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한일회담 당시부터 사죄와 배상은 「할 수 없는 것」으로 묶어 놓고 시작했다.
일본이 과거청산이 완료됐다는 것을 전제로 그 다음단계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나,아사히신문이 최근 지적한대로 임진왜란이후 일본은 조선에 침략을 사죄했으면서도 명치유신이후에 다시 정한론을 꺼내는 등 대한문제에 있어서는 정략적이었다.
일본의 남북한 등거리외교,북한과의 성급한 수교교섭,그리고 일본기업의 북한진출 등 양면적인 행동이 일본의 진심에 대한 의구심을 더욱 키우는 결과를 빚고 있다.
또 동북아나 아­태지역의 국제적 관계에 있어서도 일본은 그들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는데 있어서 한국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보고있다.
실제로 한국은 일본의 입김이 너무 강해지는 것을 우려해 미국의 동북아개입상황을 계속 유지하게 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중국도 비슷한 입장이다.
일본은 미국의 대리인을 자처하고 나서는 한국에 대해 고운 눈길이 아니다. 우리가 미국의 뒷받침을 받아 주도해 나가려는 APEC(아시아­태평양 각료회의)에 일본측이 소극적으로 나서는 점이나 말레이시아가 일본청부를 맡아 창설하려는 동남아경제권에 한국이 미국의 반대에 동조하는 것 등이 비슷한 국제관계를 반증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일관계는 진정으로 재조명될 필요성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우리도 감성적 차원에서 과거 논제에만 매달려서는 안되며 경제·정치적 힘을 강화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 등 새로운 역관계속에서 우리 대일외교의 방향타를 조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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