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핑 수주가 부실 부채질/대교붕괴… 정부 발주공사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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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업계 로비따라 최저가 오락가락/낙찰후 하청예사… 작년 1백80건
정주영국민당대표는 1일 신행주대교 붕괴사고와 관련,『공사에 관련된 사람들이 공사비를 빼먹지 않고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현대건설을 바탕으로 국내외 건설현장을 수십년간 누빈 정 대표의 이 말은 공사부조리를 한마디로 함축하고 있다.
지난달 정보사땅 사기사건이 보여 주듯 우리 사회의 부조리 구조는 복잡다기하지만 그중에서도 건설현장의 부조리는 공사발주단계부터 준공검사까지 만연돼 있다고 업계관계자 스스로가 밝힐 정도다.
공사입찰부터 보자. 현행 정부발주 공사는 최저 입찰제와 저가심사제를 병행하고 있다. 즉 입찰에 참여한 업체중 발주기관이 책정한 공사내정가에 가장 근접한 낮은 가격을 제시한 업체에 우선권을 주되 덤핑 입찰여부를 가리는 저가심사를 거쳐 최종 낙찰자를 정하는 것이다. 공사비를 적게 들이되 덤핑 입찰로 인한 부실공사도 막자는 취지다.
그러나 최저가를 제시한 업체의 공사비가 덤핑인지 아닌지는 판정하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업체를 저가심사에서 탈락시킬 수 있고 반대로 부실공사가 우려되는 데도 낙찰시킬 수 있는 것이다. 건설업체 로비실력에 좌우되는 것이다.
입찰과정에도 「담합」이라는 불공정행위가 잦다. 같은 입찰군에 속한 건설업체들끼리 순번을 정해 공사를 차례대로 따먹는 일이다. 「들러리」를 선 업체엔 낙찰업체가 공사규모에 따라 「떡값」을 떼주게 마련이다.
공사내정가가 사전에 유출되는 비리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최근 성남·안산교육청이 실시한 신축학교 전기공사 입찰에서 업체가 써낸 가격이 발주처의 내정가(성남 서당국교의 경우 7천4백79만6천7백60원)와 한푼도 틀리지 않았던 사례가 세건이나 발견된 것도 이같은 문제점을 대변한다.
우선 공사를 따고 보자는 심산에서 실제 공사비보다 낮은 값으로 공사를 낙찰받은 건설회사는 대부분 설계서와 규정을 무시하고 공사를 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수지를 맞추기 위해 저질자재를 쓰거나 투입량을 줄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은 대충대충 엉터리로 시공하고 겉만 그럴듯하게 마무리짓는 식이다. 준공 몇달만 지나면 하자보수공사가 시작되는 것이 이때문이다.
작년 10월 주암댐 사고도 시공업체인 진로건설이 11.5㎞ 도수터널을 파면서 공사비 절감과 공기단축을 위해 4백여m만 시멘트 방수처리하고 나머지 11.1㎞는 자연암벽을 그대로 방치한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목포시가 발주한 4백96억원 규모의 남해 하수처리장 공사를 맡은 현대건설도 대형 콘크리트관 밑바닥에 50㎝두께로 깔아야 할 모래를 절반밖에 투입하지 않은 사실이 작년 12월 적발됐었다.
덤핑수주한 공사비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설계를 변경하는 수단도 동원되고 있다. 암반이나 진흙·모래밭 등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만난 경우 인정되는 설계변경이 공사비를 더 타내기 위한 편법으로 악용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설계변경을 허용하는 발주처와 업체간에 「검은 돈」이 오가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공사를 따낸 업체가 이를 몇개로 쪼개 중소업체에 하청 주는 과정도 문제투성이다. 애당초 불리하게 딴 공사를 재하청주는 과정에선 공사비가 더욱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들은 1차 하청가는 낙찰가의 80%선이며 재하청이 거듭될수록 가격은 더욱 떨어져 30∼40%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건설부에 따르면 무면허업자에게 하청을 주는 등 지난해 불법하도급 건수는 적발된 것만 1백80건에 달했다.
시공과정의 이같은 비리를 감시하기 위해 감리제도가 있으나 이 또한 제구실을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현행 규정상 감리업자는 자격을 갖춘 업체를 대상으로 입찰방식으로 선정하게 돼있다. 그러나 감리입찰 과정도 앞에서 지적한 공사입찰 과정과 유사한 비리가 많다.
설계도대로 공사가 진행되는지를 감독해야 할 감리업자들이 시공업자와 유착돼 부실공사를 눈 감아주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다. 10억원이상 공사는 감리자가 공사현장에 상주해야 하는데도 시공업체로부터 영향을 받고 아예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적지않다.<심상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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