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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검사 진출, 검찰 문화 어떻게 바꿨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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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올해 여검사 수가 220명, 전체 검사의 13.5%로 늘었다. 여검사는 과연 검찰의 조직 문화를 어떻게 바꾸고 있을 까. 수사 시스템에는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 까. 변화상을 알기 위해 당사자인 여검사 4인과 만났다. 약속 장소는 서울 서래마을의 이탈리아 식당. 참석자는 임관 15년 차의 김진숙(43) 대검 부공보관(부장검사), 11년차의 김학자(40)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 1부 검사, 6년 차의 노진영(37) 서울동부지검 형사5부, 5년 차의 하담미(32)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 검사. 세대별로 생각과 경험에 차이가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 참석자 나이에 터울을 뒀다.

먼저 여검사 증가가 조직 문화에 준 영향에 대해 물었다. 참석자 중 최고참인 김진숙 부장검사가 자신의 경험을 얘기했다.

"동료나 상사, 부하가 모두 남성이었던 시대에는 아무래도 권위주의적이고요. 조직 논리가 강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은 조금씩 여성과 남성의 균형된 시각을 갖게 되고, 조직도 유연해진 것 같습니다."

여검사들은 회식 문화의 변화를 그 상징으로 꼽았다. 예전처럼 내리 폭탄주만 마시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문화 행사를 관람하고 간단히 맥주 마시고 끝낼 때가 많아요." 연극이나 영화는 물론이고 '갈갈이 패밀리' 개그 쇼, '조용필 콘서트' 등 다양했다.

"술자리요? 보통 삼겹살에 소주 한잔이죠. 물론 소폭(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을 제조해 드시는 분도 있지만, 강권하는 분위기는 전혀 아니에요."(김학자 검사)

요즘 같은 부끼리 부부동반 모임도 자주 한다. 눈 여겨 볼만한 건, 식사 후 차를 마실 때 보통 남자팀, 여자팀으로 자리가 나눠질 경우다. "부인들 쪽에 가서 앉는다."(김진숙 부장) "남편을 부인들 쪽으로 보낸다."(김학자 검사) "손 붙잡고 절대 안 떨어진다."(노 검사)로 세대 차이가 드러난다. 하 검사는 미혼이다.

수사에는 어떤 변화가 왔을까. 여검사의 경우 아무래도 부드럽게 조사하고, 원리원칙대로 적법절차를 지킨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검사가 윽박지른다고 해서 솔직히 누가 무서워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조사 받는 피의자들의 태도도 바뀌고 있다고 한다. 예전엔 "어떻게 여자한테 내 사건을 맡기냐"며 반발하는 피의자나 고소인이 적지 않았다. 요즘은 그런 소리가 쏙 들어갔다고 한다. 다만 엄벌을 바라는 피해자는 여검사를 선호하고, 가벼운 처벌을 원하는 피의자는 여검사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남자검사는 통할 것 같고, 여검사는 깐깐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은 지엽적인 것인데…아무튼 예전엔 어떻게 하면 강하게 보이나 고민했는데, 요즘은 깐깐하게 보이지 않을까 신경이 쓰입니다."(김학자 검사)

역시 여성.아동 관련 사건에서 여검사의 역할이 크다. 특히 판사, 변호사, 법정 방호원 등 재판 참여자 대부분이 남자인 재판정에서 여성 피해자의 심정을 공감하고 대변할 수 있다고 한다.

"10세 소녀에 대한 강간미수 사건이었는데, 꼭 그 아이를 법정에 오라고 해서 피고인 앞에서 증언을 시켜야 하는지 답답했습니다." (하 검사)

다만 여검사라고 해서 여성 사건 전담을 시키거나 일반 사건을 맡는 형사부에 배치시켜야 한다는 고정관념에는 부정적이었다. "최근 특수부나 공안부에 여검사가 배치되고는 있지만, 보다 많이 진출해야 한다"고 했다. 특수부는 아이디어가 중요한 수사라는 점에서 여검사에게도 맞는다는 것이다. 물론 검사와 피의자 간의 기(氣)싸움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점은 인정했다. 밤 새기 일쑤여서 기력 소모도 많다. 하지만 체력만 뒷받침되면 여성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나 하나 잘못하면 여검사 전체의 이미지에 영향을 줄까 걱정된다"(노 검사)는 부담감은 아직 남아 있다. 참석자들은 여검사 비율이 전체의 30% 정도가 되면 상황이 더욱 달라질 것으로 봤다. '소수자의 특혜'도 있다. 김진숙 부장검사의 별명은 '대검찰청 최고의 미녀 검사'. 대검에서 유일한 여검사이기 때문이란다.

이번엔 "여검사의 단점은 뭐냐"고 물었다. '사회경험 부족'을 꼽는다. 검찰 안에서 "전체 사회 구조 속에서 사건을 봐야 하는데 사건 자체만 본다는 평가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간접 경험과 훈련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혹시 스토킹을 당한 적 없는지 궁금했다. "벌금을 내고 가면서 '시간 있을 때 전화 달라'며 쪽지에 전화번호를 적어두고 가더군요."(김학자 검사) "자기를 구속시켰으니 인생을 책임지라며 1년간 구애 편지를 보내온 피의자도 있었어요."(김진숙 부장)

"사건 처리에 원한을 품고 교도소에서 계속 편지 보내고 출소한 다음에도 전화 걸어 억울하다고 할 때는 귀갓길이 겁났다"(노 검사)는 경험도 있었다.

앞으로 여성 간부들이 늘어나면 검찰의 리더십은 어떻게 변할까. 업무와 함께 개인 생활까지 보살피는 '이모' 같은 리더십을 꼽았다.

마지막 순서는 사진 촬영. 자연스럽게 옷 차림에 눈이 갔다. "여검사들은 어떤 패션을 선호하느냐"고 물었다. "제각각 취향대로 입죠. 뭐 ̄." 우문현답. 민소매 차림도 있다고 했다. 진한 색 계통의 정장 차림이 일반적이었던 종전과는 크게 달라졌다는 얘기다.

과거 남성들 틈에서 생존에 급급했던 '명예남성'이었다면, 이제는 여성성을 계속 지키면서도 남성을 추월하기 시작한 '알파걸'로 바뀌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아닐까?

좌담회 후 몇몇 남자 검사들에게 물었다. 대체로 여검사 진출에 따른 조직 문화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한 부장검사는 남녀 검사의 사건 처리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했다. 이를테면 남자들은 과연 어느 쪽이 맞을 짓을 했는지(동기.과정)에 관심이 많은데, 여성들은 얼마나 심하게 때렸느냐(결과)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업무 성취도 면에선 다소 평가가 엇갈렸다. 한 검찰 간부는 익명을 전제로 "검사는 고소인, 피의자, 수사관 등을 이끌어야 하는 직업인데, 여검사는 아무래도 사람 다루는 기술이 부족한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또 다른 간부는 "여성의 능력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사회 분위기가 아직 못 따라가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권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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