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서 만난 이명박 전 시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16일 밤 강릉에서 중앙일보 전영기 정치데스크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인터뷰를 부담스러워했다. 인터뷰 내용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자극하는 모양새로 비춰질까 신경을 썼다. 그는 박 전 대표에 대한 질문만 나오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경선 룰에 관한 이른바 '이명박 양보안'으로 한나라당을 분당 위기에서 구출했다는 통 큰 정치인의 이미지를 굳히고 싶어서였을까. 그러나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박 전 대표에 대한 섭섭함과 감정이 묻어나는 발언도 있었다.

"서울 관악구 지구당 당원대회인가 하는 데서 말입니다. 박 전 대표가 참석한 행사였어요. 그쪽의 이모 의원이 저를 겨냥하며 '장돌뱅이가 어떻게 대통령이 됩니까'라고 연설했다는 거예요. 그 얘기를 전해 듣고 저는 여간 충격을 받은 게 아닙니다. 같은 당 사람끼리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장돌뱅이라니요. 박 전 대표는 그 연설을 듣고도 제지하지 않았다는군요. 저는 내 주변 사람들한테 그런 말 못하게 합니다. 이와 비슷한 연설이 박 전 대표가 가는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전 시장과의 인터뷰가 진행된 곳은 강릉 경포대의 현대호텔이었다. 새벽부터 지방 일정을 소화한 그는 16일 저녁 평소 친분이 있는 '앙드레 김'의 강릉 패션쇼에 참석한 뒤 호텔 카페에 들렀다.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였다.

카페 손님들이 그를 알아보자 이 전 시장은 다시 엔도르핀이 솟는 듯했다. 일일이 테이블을 다니며 명함을 건넸고 손님들은 "경제를 일으켜 달라" "실업자를 없애 달라"며 악수를 청했다.

그 현장에 취재팀이 찾아갔다.

이 전 시장은 당내 문제보다 대선 본선을 얘기할 때 활기를 띠었다.

법적으로 '17대 대통령선거 예비후보 등록자'의 법적 지위를 갖게 된 때문인지 "내가 대통령이 되면" "내가 집권하면"이란 말을 자연스럽게 썼다.

자신은 '글로벌 리더'라고 했다. 역대 대권 정치인들이나 현재 당내 정쟁의 주인공들은 '로컬 리더'라고 주장했다. 이 대목에서 특히 자신감이 넘쳤다. 이 전 시장은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총리,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전 총리, 두바이의 셰이크 모하메드 통치자, 인도 압둘 칼람 대통령과의 친분을 강조하며 "이런 분들이 대통령 이명박을 조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이 이명박답지 않게 햄릿이 될 때가 있느냐'고 물어봤다. 그는 "사람을 쓰는 일은 아주 신중해야 한다. 인사를 할 때 난 햄릿이 된다"고 답했다.

'좀 멍청하나 우직한 사람과 영리하나 의리 없는 사람 중 누구를 발탁하겠느냐'고 물어봤다. 그는 "나는 의리 없는 사람은 안 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긍정적 사고방식을 가졌느냐다"고 말했다.

전영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