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조류독감에 사스…防疫 문제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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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음성에서 닭과 오리의 조류독감 감염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대만에서 올해에도 다시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환자가 발생한 것으로 최종 확인돼 정부가 주의보를 내렸다. 여기에 살인 독감으로 불리는 푸젠 A형 독감이 북미와 유럽을 휩쓸고 대만에 상륙한 상태여서 올 겨울은 이들 전염병과의 어려운 싸움이 예고되고 있다. 이처럼 정부의 질병관리.방역체계가 시험대에 올라 있으나 벌써부터 적신호가 켜지고 있어 불안하기 짝이 없다.

조류독감이 발생하자 감염된 닭과 오리의 매몰작업을 벌였으나 진행 속도가 더뎠다. 음성군에서는 인체 감염을 우려한 공무원들이 작업을 기피했고, 인근 군 부대에서도 같은 이유로 통제초소에만 인력을 배치하는 등 몸을 사렸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이 밖으로 알려져 비난이 쏟아진 뒤에야 정부가 군 인력을 확대 투입하고, 음성군도 간부들까지 매몰작업에 참여키로 했다고 한다. 위험한 전염병일수록 방역의 성패가 신속한 초기대응에 달려있는데 이렇게 나사가 풀려 있어서야 국민이 어떻게 방역 당국을 믿고 효과적인 방역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푸젠 A형 독감도 그동안의 확산 추세로 보아 머지않아 국내에 환자가 발생하리란 경고가 나온 지 오래다. 걱정스러운 것은 지난 9월 이후 국내에서 1천5백만명이나 접종한 독감 백신이 푸젠 A형 독감에 대해선 50% 정도의 효과만 있다는 점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올해 유행할 독감 바이러스를 홍콩 B형.파나마 A형 등으로 잘못 예측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다른 방법이 없는 만큼 효과가 낮더라도 노인과 어린이를 중심으로 백신 접종을 늘리고, 공항.항만과 병원의 방역.감시체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겨울 동남아시아 각국이 예외없이 사스로 큰 타격을 입었을 때 국내 침투를 막아 사망자 없이 고비를 넘긴 값진 경험이 있다. 방역 당국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국민 각자의 보건의식이 긴요하다. 연말연시지만 절제 있고 건전한 생활습관을 유지한다면 위협적인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